연인과 모텔에 머문 일시, 식당에 같이 간 친구들의 이름…. 개개인의 사생활을 정부에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 여차하면 정부는 이런 민감한 정보를 이름만 가린 채 전국민에게 공개한다. 지금은 한장에 100원 밖에 안하는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온가족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백신 안 맞은 사람은 친구들과 같이 식당에 가도 '나홀로 식사'를 해야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풍경은 3년전 우리의 일상이었다. 최근 출간된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는 'K방역' 찬사에 밀려있있던 '대한민국의 코로나19 팬데믹 초상화'를 그린 책이다.
저자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 등 연구자 6명. 김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등 탄탄한 데이터 분석과 섬려한 문장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학자이자 작가다.
굳이 과거 풍경을 돌아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제 병원 갈 때 빼면 마스크를 챙길 필요조차 없어졌는데 말이다. 저자들은 "한국어로 쓰인 학술교양서가 대학에서 유의미한 실적이 되지 못하고, 재난과 고통에 대한 책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잘 알면서도 머리를 맞대고 이 책을 썼다.
저자들은 지난 3년간 발표된 논문, 보고서, 신문기사, 단행본을 살피고 활동가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책은 이렇게 답한다. "미래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엇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의 축적이 만들어 낸 현재가 밀고 나가는 세계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시작은, 팬데믹 시기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다.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는 이 바이러스 앞에 모든 인간이 똑같이 위험하다며 "거대한 평준화"라고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규칙을 정하고 우선순위도 매겼다. 그렇게 울타리를 치면 울타리 바깥의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이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이주민이다. 이들은 팬데믹 초기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마스크 지급 등 방역대책에서 배제됐다. 서울시가 외국인 노동자만 콕 집어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주한 영국대사 등의 항의를 받고 이틀 만에 철회한 일도 있었다. 경기도는 외국인노동자 전수검사를 강행했다. 대학, 공장 등 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외국인만 코로나19에 감염될 리 없는데도 비과학적이고 차별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생산과 재생산을 담당할 인력으로서의 이주민은 절실하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마스크 한 장조차 동등하게 지급하는 것을 껄끄러워한 방역 정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코로나19 시기 이주민들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몹시 명료한 것이었다. '필요하니 여기 남아라, 하지만 알아서 살아남아라.'"
이주민들은 백신 정보에 접근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백신 접종 안내문을 한국어 외 12개 언어로 발표했다. 한국이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받고 있는 건 16개 국가다. 이들 국가의 언어들조차 다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비상 시국에 어떻게 외국어까지 챙기느냐'고 따지기 전에 해외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호주는 백신 접종 정보를 63개 언어로, 미국은 65개 언어로 발표했다.
"(한국 내 중국인이나 중국 동포에 대한 혐오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비아시아권 국가들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기승을 부린 것과 매우 흡사했다. 국내 언론들은 이를 '아시안 협오'로 규정하면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지만, 이러한 비판이 내부로 향하지는 못했다."
책은 이주민뿐 아니라 장애인, 비정규직, 아동, 여성 등이 팬데믹과 함께 겪어내야 했던 불평등도 짚는다. 재택수업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은 돌봄공백 상태에 놓였고, 부모의 경제적 상황에 따른 학력 격차는 심화됐다. 여성들은 직장이 있든 없든 돌봄노동에 내몰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유급백신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읽기 참 거북한 책이다. 'K방역' '방역모범국'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박혀 있는데, 책은 자꾸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책을 붙잡게 만드는 건 각 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연구자들의 공력 덕분이고, 이 껄끄러움이 독서의 본령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신나고 편안한 건 종이 바깥에도 많다. 사람들을 애써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직 활자가 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