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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클래식 감동 여정을 아르떼에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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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총 487

  • 마틴 보이스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마틴 보이스(57)는 보잘것없는 잡동사니로 우아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설치미술가다. 그는 쓰레기통, 네온사인, 철근 등을 조합해 만들어낸 미니멀리즘 조각과 가구 등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 하나인 터너상을 2011년 수상했다. 평론가들은 그에게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서정적이고 쓸쓸한 분위기를 탁월하게 연출해냈다”는 찬사를 보냈다.  2024년 아트바젤 파리에서는 현대미술상인 ‘플럭서스 상’ 명예상을 받았다. 플럭서스상 위원회는 “보이스의 작품은 조각품, 벽화, 이미지,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영역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모더니즘의 미적, 정치적 유산을 탐구하는 탁월한 조각품”이라고 소개했다.  지금 서울 이태원동의 갤러리 에바 프레젠후버에서 열리고 있는 보이스의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천정에 설치된 모빌(움직이는 조각) 작품인 ‘파도의 무게’에서 보이스는 쇠사슬과 쇠막대 등 간단한 재료들을 통해 달이 뜬 밤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져있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보이스는 “작품이 계속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만들어 꿈과 기억이 주는 애잔한 느낌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죽은 별(노란 벽 램프)도 마찬가지로 애수의 감정을 전하는 작품이다. 빛을 잃은 조명을 통해 수명을 다해 빛을 잃은 ‘죽은 별’을 표현했다. 이처럼 평범한 물건들로 깊은 감정과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평소에 보 는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게 보이스 작품의 특징이다.  세 점의 목판 패널 'Oceans', 'Falling', 'Always'는 일종의 시(詩)다. 이 판화들의 특징은 합판에 구멍을 뚫어 만든 '별'인데, 잉크를 묻혀 인쇄했을 때 합판 위에 난 구멍들이 별이 빛나는 하늘의 이미지를 연출한다는 설명이다. 작품에 포함된 청동 조명 스위치는 별을 켜고 끄는 행위를 위트있게 표현한다. 목판과 판화의 병치는 미니멀리즘 회화에 대한 보이스의 탐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작업 과정의 흔적을 보여준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열린다.

    설치미술가1967 ~
    40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심리 스릴러로 알려진 미국 소설가다. 톰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한 5부작 ‘리플리 시리즈’가 유명하다.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았고, 정체성과 대중적 도덕성에 대한 개념에 질문을 던졌다.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그를 ‘불안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1921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난 하이스미스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6세에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다. 1942년 대학 졸업 후 만화책 작가로 일하면서 여가 시간에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을 썼다. 문학적 돌파구는 그가 1950년 첫 번째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출간하면서 찾아왔다. 이 소설은 1951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5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호평 받았으며, 심리 스릴러의 주요 지지자로 그의 명성을 굳건히 했다. 1963년 하이스미스는 영국으로 했다. 기혼 영국 여성과의 관계가 깨지자 1967년 프랑스로 옮겨가 삶을 재건하려고 했다. 하이스미스의 책 판매는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아졌다. 미국 범죄 소설의 관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1982년 스위스로 이주한 후에는 비평가들을 점점 더 분열시킨 새로운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생애의 마지막 몇 년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95년 스위스에서 재생불량성 빈혈과 폐암으로 사망했다. 하이스미스는 도스토옙스키, 키르케고르, 니체, 카프카, 사르트르, 카뮈 등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품이 살인자들이 처벌받지 않거나 우연히 처벌받는 비도덕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고 봤다. 하이스미스는 1966년에 “생명도 자연도 정의가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썼다. 비이성적 행동, 비정상적 심리, 극단적인 감정 상태는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하이스미스 전기 작가 리처드 브래드포드는 “하이스미스가 해결 없이 끝없이 고민했던 죄책감, 증오, 자기혐오, 충족되지 않은 갈망과 같은 문제가 그의 허구적 서사와 캐릭터를 위한 칵테일이 되었다”고 했다. 비평가 데이비드 코크런은 하이스미스의 작업을 교외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봤다. “주요 관점에 따르면 교외에 있는 가족, 집, 성공적인 직업은 정신 건강과 행복과 동일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질병이 생긴다. 하지만 하이스미스는 이러한 대립을 깨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특히 미국 남성에 대한 그녀의 관점에서 하이스미스는 교외 이상의 많은 이념적 기반을 전복했다.”

    소설가1921 ~ 1995
    60
  •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러시아의 발레 황태자로 불렸던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지난 1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1985년 레닌그라드 태생인 그는 2003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세계적인 명성의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했다. ‘백조의 호수’,‘지젤’,‘돈키호테’등 유명 작품에서 주역으로 데뷔했고 완벽한 외모와 테크닉으로 찬사받았다. 20년간 프로 무용수로 활약하면서 어느 발레단이나 함께 공연해보고 싶은 발레리노였다. 영국 로열발레단과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서 객원 주역 무용수로서도 활약한 바 있다. 2019년에는 방한해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창작발레 ‘춘향’의 무대에 섰다. 수석무용수 강미선이 춘향을 맡았고, 그는 이몽룡을 연기해 ‘푸른 눈의 도련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무용 전문지 ‘댄스 탭’은 그에 대해 “무엇이든 다 잘 하는 무용수”라고 첫머리에 썼다. 높은 점프, 빠르고 빈틈없는 회전, 정갈한 발동작 등 테크닉은 물론 고전, 컨템퍼러리 작품을 오갈 수 있는 조화로운 외모와 기분 좋은 이미지까지 갖췄다고 평가했다. 고인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사고사로 가닥을 잡고 있다.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아메리카발레시어터는 곧바로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메이 나가히사는 개인의 SNS를 통해 "할말이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짤막한 글로 충격을 표현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발레단과 무용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안식을 기도했다. 가족으로는 마린스키발레단 동료 무용수 아내와 1남 1녀가 있다.

    발레1985 ~ 2024
    210
  • 야스미나 레자

    야스미나 레자는 프랑스의 희곡 작가다. 프랑스어권 작가 중 처음으로 토니상을 받았고, 몰리에르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파우스트상 등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공연상을 휩쓴 프랑스 대표 작가다. 레자는 유대계 이란인 엔지니어 아버지와 유대계 헝가리인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1959년 태어났다. 파리 제10대학에서 연극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자크 르코크 국제연기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이후 연극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첫 번째 희곡 '장례식 후의 대화'를 발표해 희곡 작가로 데뷔한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의 공연상인 몰리에르상을 받으며 단숨에 공연계의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연극 '겨울나기'로는 1990년 몰리에르상에서 베스트 프린지 프로덕션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1994년에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트'를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레자는 몰리에르상 최고 작가상을 받았고, '아트'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무대에 올랐다. 1995년 파리에서 초연한 '아트'는 1996 개막한 런던공연으로 로렌스올리비에상과 이브닝 스탠더드상을, 1998년 무대에 오른 뉴욕 공연으로 토니상까지 휩쓸었다. 2006년에는 '아트'와 더불어 레자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희곡 '대학살의 신'을 펴냈다. 이 작품으로 레자는 또다시 토니상과 로렌스올리비에상을 받았다. 그외에도 비엔나의 연극상 네스트로이상과 독일어 공연 부문 최우수상까지 수상했다. '대학살의 신'은 영화로도 각색돼 프랑스 2012년 세자르 최우수 극본상을 받기도 했다. 레자는 희곡 외에도 소설, 수필, 시도 발표했으며, 영화계에서도 왕성히 활동했다. 디디에 마티니 감독의 영화 '내일 만나요'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배우로 직접 출연했다. 2008년에는 자신이 쓴 희곡 '살육의 신'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영화를 직접 연출, 2009년에는 자신의 희곡인 '스페인 연극'을 원작으로 영화 '치카스'를 직접 각색·감독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모순과 위선을 익살스럽게 그리는 '블랙 코미디'가 레자의 작품의 특징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 속에서 끄집어낸 인간과 삶에 대한 고찰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인간의 집착, 욕구, 충동과 같은 심리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작가1959 ~
    110
  • 타르모 펠토코스키

    2000년생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는 클라우스 메켈레와 함께 '지휘 강국' 핀란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젊은 마에스트로다. 그는 즉흥 연주를 즐기는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하다. 24세의 젊은 나이에도 여러 국가의 명문 오케스트라 수장 자리를 꿰차며 동년배 중 독보적인 커리어를 밟고 있다.  8세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11세에 바그너의 오페라에 매료됐다. 악보의 음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14세가 되던 해 핀란드의 전설적인 지휘 스승 요르마 파눌라로부터 첫 레슨을 받았다. 4년 후 그는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입학해 지휘와 피아노를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카리 오라모의 지휘 수업을 들었다. 한누 린투, 주카-페카 사라스테, 에사-페카 살로넨 등 핀란드 출신 지휘 스승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던 그는 현재 정규 교육을 뒤로하고 여러 악단과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2022년부터 독일의 명문악단 브레멘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이 악단이 수석 객원 지휘자를 임명한 사례는 그가 처음이다. 그는 이후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임명됐다. 22세의 나이로 핀란드 에우라요키 벨칸토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연주하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22년 5월에는 라트비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및 예술 감독으로 임명됐으며 같은 해 12월 프랑스 툴루즈 국립 카피톨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지명됐다. 당시 러시아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가 사임하고 공석이던 자리를 20대 초반의 펠토코스키가 이어받은 것이다. 펠토코스키는 툴루즈 국립 카피톨 오케스트라에 올해 9월부터 취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함께 2026~2027년 시즌부터 시작되는 홍콩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도 지명됐다. 홍콩필은 현재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이끌었던 아시아 명문 악단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에는 최고 권위의 음반사로 인정받는 도이치 그라모폰(DG)과 녹음 계약을 체결해 주목 받았다. 'DG와 계약한 최연소 지휘자' 타이틀은 얻은 그는 지난 5월 DG에서 발매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도이치 캄머필하모니와 작업한 이 음반은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36번 '린츠', 40번 G단조로 구성됐다. 사진 © Peter Rigaud

    지휘자2000 ~
    60
  • 최진영

    “지겹고, 뻔하고, 할 만큼 했다 싶지만 여전히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 것 아닐까요.” 소설 <구의 증명>이 뒤늦게 베스트셀러 ‘역주행’을 한 이유를 두고 최진영 작가는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한 바 있다. 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2015년 출간된 책이다. 가난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는 별다른 홍보나 특별한 계기 없이, 독자들의 입소문만 타고 약 10년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 작가의 소설 <원도>도 절판된 후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3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란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절판 후 온라인 중고책 시장에서 정가의 3~4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된 바 있다. 최 작가는 일반 독자 뿐 아니라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쓰는 등 평단으로부터도 인정 받고 있다. 2014년 소설집 <팽이>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엔 장편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은 말기 암에 걸린 40대 ‘나’가 시골 마을의 폐가를 구해 수리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얼마 전 최 작가는 등단 후 처음으로 산문집 <어떤 비밀>을 발표했다. 경칩부터 우수까지, 24절기에 맞춰 쓴 편지와 산문을 엮은 책이다. 최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이는 글이다.

    소설가1981 ~
    80
  • 예프게니 키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경의로운 피아니스트.” 러시아 출신의 명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을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남긴 찬사다. ‘피아노의 황제’로 불리는 예프게니 키신은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딸 아라벨이 “내 생에 딱 한 번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는) 잘츠부르크에서 진행된 키신의 오디션 직후였다”고 언급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197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예프게니 키신은 두 살이 되던 해 귀로 들은 선율을 그대로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천재성을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예프게니 키신은 여섯 살이 되던 해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의 영재 특수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피아니스트 안나 파블로나 칸토르를 사사한 그는 열 살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 466을 연주하면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첫 피아노 리사이틀을 열었다. 1984년 드미트리 기타옌코 지휘의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협연한 무대에서 흠결 없는 연주력을 선보이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0년대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막심 벤게로프와 함께 ‘러시아 신동 삼총사’로 불렸다. 그는 1988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솔리스트, 1990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 등으로 발탁되면서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 1990년엔 19살의 나이로 미국 카네기홀의 100주년 기념 공연 오프닝 무대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예프게니 키신은 클라우디오 아바도,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과 거듭 호흡하면서 수많은 명연을 남긴 피아니스트로 기록돼있다. 아울러 그는 그래미상, 에디슨상, 황금 디아파종상, 그랑프리 뒤 디스크상, 에코 클래식상 등 지난 40년간 주요 음악상을 휩쓴 피아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부터 해외에 거주한 예프게니 키신은 현재 영국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1971 ~
    230
  • 미카 로텐버그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과 원료에 일부 빚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평소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데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미디어작가 미카 로텐버그(48)의 작품은 다르다. 그의 작품 주제는 심각하지만 발랄한 유머를 담고 있다. 로텐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대해 비평할 때는 너무 진지하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유머는 내가 작가로서 세상에 대응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로텐버그가 세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런 유머감각 덕분이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는 시카고 현대미술관, 뉴욕 뉴뮤지엄, 파리 팔레 드 도쿄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베네치아비엔날레에도 세 번(2011년, 2015년, 2018년)이나 작품을 출품한 세계적인 작가다.  로텐버그가 자주 다루는 주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과 현대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다. 그가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출품한 ‘노 노즈 노우즈’(No Nose Knows)는 중국의 한 공장에 다수의 여성이 쪼그려 앉아 인공 진주를 만드는 과정과 뉴욕의 한 세트장에서 재채기를 하며 스파게티를 만드는 여성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재채기가 어떻게 스파게티가 되는지, 스파게티가 진주와 무슨 상관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초기작 ‘메리의 체리’도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 등장인물들은 좁은 공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체리를 생산한다.  최근작인 ‘램프셰어’는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스튜디오 주변에 있던 덩굴과 뉴욕에서 수집한 폐플라스틱 등을 이용해 제작했다. 로텐버그는 이 작품에 자연의 순환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지금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는 로텐버그의 이 같은 대표작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지난 20여년 간 작업해 온 영상과 설치, 조각 등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대표작으로 대규모 상품 유통 과정을 역설적으로 묘사한 ‘코스믹 제너레이터’를  꼽았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열린다.

    뉴미디어 아트 작가1976 ~
    570
  • 오시마 나기사

    1950~1960년대 세계 영화계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누벨바그 경향이 주도권을 잡았던 시기였다. 기성 영화에 저항하는 파격적인 실험이 돋보이며, 작가주의라는 이름으로 후대 영화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누벨바그는 프랑스에서 출발해 일본에서도 꽃을 피웠다. 1950년대 일본 영화의 황금기가 사그라들 무렵 등장한 오시마 나기사(1932~2013)는 전후 일본 영화계를 대표한 거장으로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로 기억된다. 일본 오카야마현 타마노시에서 태어난 오시마는 명문대인 교토대 법학과에서 공부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대학에서 기성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을 키운 그는 졸업 후 일본 메이저 영화사인 쇼치쿠에 지원해 조감독으로 영화계 첫발을 내디뎠다. 조감독 경력 5년 만인 1959년 27살의 나이에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감독에 데뷔했고, 이듬해 ‘청춘 잔혹 이야기’를 선보이며 일본 영화의 미래로 떠올랐다.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정제된 도덕을 강조하는 전통에 반발하는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계에 새로운 자극을 준 것이다. 오시마의 영화는 정치 사회적 부조리를 다루고 왜곡되고 비틀린 성(性)을 묘사하는 데 거침없다. 1976년 일본과 프랑스 합작영화로 선보인 ‘감각의 제국’은 당시로선 충격적인 수준의 표현 수위로 충격을 줬다.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와 재일한국인을 차별하는 사회상도 영화로 가감 없이 비판했다.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가 주연하고 일본 국민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대한 거부감과 동성애적 코드가 드러나는 대표작이다. 국내에선 오는 20일 41년 만에 첫 리마스터링 개봉한다.

    영화감독1832 ~ 2013
    350
  • 미하일 포킨

    ⓒFokine Estate Archive 188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미하일 포킨은 20세기 클래식 레퍼토리에 큰 영향을 미친 무용수이자 안무가다. 유년시절부터 무용에 두각을 나타냈다. 9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마리우스 프티파의 지도 아래 ‘탈리스만’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림에도 열정적이었고, 만돌린, 돔라 등 악기도 연주할 정도로 예술 분야에서 다방면의 재능을 보였다. 그는 20세기 초를 뒤흔든 유럽의 발레단 발레뤼스의 첫 상주 안무가로 활동했다. 이듬해인 1910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셰헤라자데’를 발레로 만들었다. 역사적으로는 부정확한 요소들이 많았지만, 셰헤라자데는 화려한 색상, 이국적인 분위기 등으로 큰 성공을 이끌었다. 1910년 발레단의 유명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이 작품의 황금노예 역할을 맡으면서 전성기릘 누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으로 구성된 ‘불새’는 음악, 드라마, 무용 등 요소를 모두 고려해 종합 예술을 만들던 바그너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포킨은 1918년 스웨덴으로 이주한 뒤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921년 발레학교를 1924년에는 아메리칸 발레 컴퍼니를 설립했다. 포킨은 유럽과 미국에서 80개 이상의 발레를 무대에 올렸다. ‘빈사의 백조’를 비롯해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마린스키발레단은 2011년 7월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포킨의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포킨은 다른 안무가와 다르게 명확하고 완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첫 리허설에 참석했던 완벽주의자였다. 안무 발상이나 강렬한 음악성, 악보를 외우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발레1880 ~ 1942
    340
  • 올가 토카르추크

    최근 국내 첫 단편집 <기묘한 이야기들>이 번역 출간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62)는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상담사로 일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은 토카르추크 작품의 본질적 특징이다. 등단 초기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1993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책의 인물들의 여정>은 폴란드 출판인 협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태고의 시간들>(1996)은 폴란드 시사 잡지 ‘폴리티카’의 ‘올해의 추천도서’로 뽑혔고, <방랑자들>(2007)로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 상을 받았다. 이 책은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의 작품 세계를 두고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 낸 서사적 상상력”이란 찬사를 보냈다. 토카르추크의 작품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돼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랑받고 있다. 2009년 발표한 추리소설 <죽은 자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영화화돼 201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E.E’는 폴란드에서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고, 그밖에 여러 작품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소설가1962 ~
    270
  • 윌리엄 포사이스

    윌리엄 포사이스는 50년 넘게 안무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 레퍼토리와 동일시되던 발레를 21세기형 예술로 재조명한 안무가로 평가받는다. 발레의 한계를 혁신적으로 확장해 고전 발레가 현대 무용으로 옮겨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4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대 초 유럽 무대에 무용수로 등장해 1984년부터 20년간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는 수많은 모던 발레 작품을 창작했고, 뉴욕시티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등 세계 유명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도 만들었다. 2005년 포사이스 컴퍼니를 창단한 이후 철학과 미술, 건축, 영상을 결합한 실험적인 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무용 부문에서 너무 전위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최근에는 다시 발레의 현대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상승의 한가운데’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 등이 있으며 유럽 지역의 발레단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은 놀라운 속도와 정교한 테크닉으로 발레의 고전적인 문법을 해체하며 유수 발레단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남녀 무용수 5명이 복잡한 선율의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의 피날레곡을 무용으로 가시화한 명작이기도 하다.

    발레1949 ~
    180
  • 카를로스 클라이버

    1970~80년대를 주름잡던 세계적인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인정한 천재였다. 그는 공연을 많이 하거나 여러 음반을 남기지 않았고, 매체에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던 '은둔의 완벽주의자'였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카라얀이나 번스타인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음악가였던 것이다. 193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명지휘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부친 에리히 클라이버는 당시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계에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에리히가 나치와 대립하게 되면서 클라이버 일가는 독일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고,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남미에서 생활하다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일찍부터 작곡을 하고 피아노, 팀파니 등을 연주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음악적 재능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여러 극장을 전전하다 오페라 극장 지휘자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24세였던 1954년 베를린 인근의 포츠담에서 카를 밀뢰커의 오페레타 '가스파로네'를 지휘하며 데뷔했고 이후 뒤셀도르프, 취리히, 슈투트가르트 등 여러 지역의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했다.  1968년부터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자주 지휘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1973년 빈 국립오페라에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했고, 1974년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를, 같은 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무대에 섰다. 1978년에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주요 무대 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청중을 매료하고 매니아들을 생성했다. 빈 필하모닉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지휘대에 섰던 카를로스는 음악 감독을 맡거나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이는 음악에만 집중하려 했던 그의 성향 탓인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카를로스는 연주 횟수를 줄이고 레퍼토리도 크게 확장하지 않았다. 바이에른 국립관현악단과 빈 필, 베를린 필 등 몇몇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2~3년에 몇 번 정도의 무대에 섰다. 그는 리허설을 보통의 두 배 이상 할만큼 완벽주의자였고, 종종 연주를 취소하고 잠적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또, 그는 음반 작업도 꺼려해서 그의 공연은 정규 음반 대신 객석에서 몰래 녹음한 해적판이 횡행하기도 했다. 클라이버는 주목받고 기록되기 보다는 음악의 순간성을 좇았고, 라이브 공연을 하는 그 순간의 완벽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클라이버의 독특한 성향은 사람들을 더욱 열광시켰고, 그의 공연은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많은 음반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음반 대부분이 최고의 명반으로 인정받는다. 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도이치 그라모폰(DG) 음반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은 그의 전설적인 명반으로 꼽히며 오페라에서는 베버 '마탄의 사수'(DG)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DG),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DG) 등이 꼽힌다.

    지휘자1930 ~ 2004
    540
  • 하인즈 베르그루엔

    아름다운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세기의 걸작은 굳게 잠긴 장벽마저 열어젖힌다. 전쟁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를 미술로 이은 전설적인 컬렉터, 하인즈 베르그루엔(1914~2007) 얘기다. 독일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베르그루엔은 1936년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들어간 그는 디에고 리베라의 조수로 일하며 미술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처음 구입한 작품은 스위스 작가 파울 클레의 ‘팬텀 퍼스펙티브’(1920)로, 그는 이 작품을 평생 부적처럼 간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신문사 기자와 유네스코(UNESCO) 관리직 등을 거치다가 본인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열었다. 파블로 피카소와 교류하며 입체주의 화풍에 감명받은 그는 피카소와 마티스, 자코메티 등의 작품을 사들였다. 베르그루엔은 1980년대에 접어들며 갤러리 활동을 관뒀다. 작품 거래보다는 우수한 컬렉션을 확보하고, 이를 기증하며 보존하는 데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에 본인이 가장 아끼던 파울 클레 컬렉션을 기증했다. 2000년 독일 프로이센 문화유산재단에 현대미술 165점을 넘겼다. 피카소 100여점을 비롯해 마티스 20여점, 파울 클레 60여점 등 하나같이 걸작들이다. 베르그루엔은 자신의 컬렉션이 온전한 상태로 꾸준히 전시되길 바라는 마음에 추정가의 10% 수준으로 해당 작품들을 넘겼다. 나치 정권 당시 현대미술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며 ‘미술 불모지’로 전락한 베를린에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독일에서 핍박받던 유대인 출신인 컬렉터가 선뜻 작품을 내놓는다는 점도 이례적이었다. 피터 클라우스 슈스터 베를린 국립박물관 총감독은 “베르그루엔은 자신을 쫓아낸 독일에 화해의 손길을 건넸다. 자신처럼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던 현대미술과 함께”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베르그루엔은 1996년 자신의 기증품을 바탕으로 베를린에 베르그루엔 박물관을 설립했다. 유럽 현대미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9년 독일연방공화국 공로장 대십자상을 수훈하고 베를린 명예시민으로 위촉됐다. 말년에 파리 피카소 박물관에서 전시를 열던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닙니다. 저는 유럽인입니다. ‘유럽인’이라는 국적이 따로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저 꿈같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진출처 : 베를린 베르그루엔 박물관, 'Heinz Berggruen - San Francisco 1939')

    현대회화1914 ~ 2007
    200
  • 장한나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새로운 세대의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한국인이 있다. 2017년부터 노르웨이 정상급 악단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를 맡은 데 이어 2022년 9월 독일 명문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 자리까지 꿰찬 장한나다. 대한민국 수원에서 태어난 장한나는 여섯 살 때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1994년 12세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첼로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장한나는 현대 음악상도 거머쥐면서 2관왕에 올랐다.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악단들과 호흡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2003년엔 세계적 클래식 음반 시상식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협주곡 부문을 수상하면서 연주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외에도 2번의 에코 클래식상이 그의 몫이었다. 국제무대에서 연주자로 활약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2013년 트론헤임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발탁됐다. 같은 해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도 취임한 그는 이듬해 영국 BBC 프롬스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호평을 받았다. 2015년엔 영국의 BBC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최고의 여성 지휘자 19인’ 명단에 들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장한나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쾰른 방송 교향악단,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열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오케스트라,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에서 객원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지휘자1982 ~
    470
  • 김금희

    김금희는 한국 소설가다. 인하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감정의 섬세한 묘사, 현대인의 고립과 연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등이 있다. 그는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곧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인천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목재 단지가 있던 곳에서 자랐는데, 그의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에 이런 인천 변두리 풍경이 잘 담겨 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직장에 다녔다. 어린 시절 늘 혼자 집에 있었다. 이때 쌓인 외로움과 분노를 극복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1998년 인하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고 소설만 쓰고 싶어 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었다”고 그는 당시를 기억했다. 대학 졸업 후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자로 일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사회적 불의와 사회적 연대의 기회를 모두 느꼈다. 회사가 급여 지급 등 직원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지 않고 시혜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금희는 이것은 회사가 직원들을 복종시키는 방식이라 봤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일하는 사람들끼리 연대가 가능함을 발견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2015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시작으로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금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낡은 것들의 귀환이다.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겉보기에 유연한 사회 질서 아래에 있는 경직성이나 전망 없는 삶에 대한 절망에 관심이 없다. 대신 그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좌절된 현실을 거부하거나 도망치는 대신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또 오래되거나 잊힌 것들의 가치를 회복한다. 첫 책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에 실린 단편 대부분은 지난 시기의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설 자리가 없는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너의 도큐먼트’는 집 나간 아버지를 찾아 지도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은 중산층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 일한 부모의 삶을 이해하려는 한 여성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김금희는 첫 번째 책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덜 썼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옛것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보여준다. 예컨대 ‘조중균의 세계’는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한 지나간 시대의 이름 없는 시인들에 대한 단편소설이다. ‘세실리아’는 성폭행 피해자이자 사회적 소외자인 세실리아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소설가1979 ~
    450
  • 트레버 영

    트레버 영은 현재 홍콩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다. 수족관과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그의 설치작업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최근 굵직한 국제 미술 무대마다 홍콩의 ‘간판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2024년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홍콩 국가관 대표 작가로 나섰을 뿐 아니라 시드니 비엔날레, 라호르 비엔날레에도 참가했다. '2024 아트바젤 파리'에서 홍콩관광청이 기획한 휴게음식점 ‘차찬팅’에선 그의 샹들리에 조명 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역설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공개한 ‘회피의 동굴(Cave of Avoidance)’(2024)이 단적인 예다. 작품은 수족관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정작 그 내부에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다. 작품을 본 관객이 유리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마주치도록 의도한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롤링 골드 파운틴(Rolling Gold Fountain)’(2024)에선 수족관 안에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배치했다. 풍요와 복을 상징하는 황수정을 활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 중 일부는 평범한 유리로 만든 가짜 보석이다. 인간의 허영심을 지적한 작품으로 풀이된다. 작가는 1988년 중국 광둥성 둥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산물 식당을 운영했다. 학교를 마친 뒤 수족관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여동생과 함께 살던 방에 어항만 7개를 놓을 정도로 해양 생태계에 매료됐다고.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애완 물고기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의 생물은 작가의 표현 수단이 됐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초기작 ‘홍콩에서 살고, 둥관에서 태어났다’(2015)에선 6개의 어항에 나눠 담긴 외래종 물고기를 통해 작가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사물과 동·식물, 인간을 연결하는 그의 작품은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중화권 작가들을 대상으로 격년마다 시상하는 시그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작가는 싱가포르 비엔날레(2022), 카트만두 비엔날레(2022), 상하이 비엔날레(2014) 등에 참여했다. 지난 2022년부터는 런던 가스웍스,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등 서양 미술계에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경DB)

    설치미술가1988 ~
    710
  • 톰 웨슬만

    붉은 립스틱을 칠한 금발 여성, 코카콜라와 맥주로 가득한 가정집 냉장고, 성조기를 상징하는 빨강·파랑·하양의 과감한 색채…. 1960년대를 풍미한 팝아티스트 중에서도 톰 웨슬만(1931~2004)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평화와 풍요가 겹쳤던 미국의 호시절을 묘사하면서다. 그의 ‘위대한 미국의 누드(The Great American Nude)’ 연작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선거 구호로도 등장하는 ‘위대한 미국’의 이미지 그 자체다. 웨슬만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대학을 여러 번 옮겼다. 처음 히람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고자 신시내티 대학에 들어갔다. 2년간의 군 복무 중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역한 뒤 전업 만화가의 길을 걷고자 신시내티 아트 아카데미에 등록했고, 몇몇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인생의 전환점은 1956년에 찾아왔다. 미술 공부를 이어가고자 뉴욕의 사립대학인 쿠퍼 유니언에 들어가면서다. 학교 캠프로 뉴저지 교외 지역에서 풍경화를 그리던 그는 화가로서 본인의 잠재력에 눈을 떴고, 순수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같은 기간 작가는 학교에서 향후 평생의 친구이자 모델이 될 부인 클레어 셀리도 만났다. 뉴욕의 미술계는 거대했다. 특히 작가는 로버트 마더웰, 빌렘 드 쿠닝 등 당대 현대미술계를 주도했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한테 감명받았다. 하지만 작가는 누드와 정물, 풍경 등 현실 속 대상들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졌다. 추상표현주의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상 사물과 광고 문구를 결합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대표작은 1961년부터 총 100점의 연작을 그려낸 ‘위대한 미국의 누드’ 시리즈다. 어느 날 작가는 꿈에서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이라는 문구를 봤다고 한다. 모두 미국 성조기에 포함된 색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성 해방운동 사상이 결합했다. 작가는 그동안 유럽의 회화에서 묘사한 고상한 여성상을 비웃듯 도발적인 누드화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후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TV와 냉장고 등 실제 가전제품을 활용한 ‘인테리어(Interior)’, 여성의 가슴 형태로 자른 캔버스에 그린 ‘시스케이프(Seascape)’ 등이다. 여성의 발과 입술, 손가락 등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하는 등 에로틱한 소재를 다루기도 했다. 작가는 슬림 스틸링워스라는 가명으로 본인의 예술세계를 자평한 자서전을 1980년에 펴내기도 했다. 이후 작가는 자신이 동경하던 추상표현주의로 일부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 강철과 알루미늄을 잘라 만든 입체 회화 시리즈가 단적인 예다. 말년의 작가는 초기 여성 누드화의 구도를 추상적으로 재해석한 ‘석양 누드(Sunset Nude)’ 시리즈를 남겼다. 심장병 악화로 여러 차례 수술받던 작가는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웨슬만의 타계 20주년을 맞아 그의 작업 세계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2024년 아트바젤 파리 기간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에선 ‘팝 포에버: 톰 웨슬만 &…’ 전시가 열렸다. 웨슬만의 회화와 설치작업 150여점을 중심으로 아이웨이웨이, 제프 쿤스 등 후대 팝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함께 걸었다. 전시는 2025년 2월 24일까지. (사진출처: © 2024 The Estate of Tom Wesselmann)

    현대회화1931 ~ 2004
    200
  • 윌리엄 깁슨

    윌리엄 깁슨은 공상과학소설(SF) 작가다. ‘사이퍼 펑크’라는 SF이 하위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한데,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도 깁슨이었다. 깁슨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 ‘페리퍼럴’ 때문이다.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공개된 이 드라마는 제작 기간 4년, 제작비 2400억원을 들인 SF 블록버스터다. 깁슨은 <패리페럴>에서 자신만의 근미래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 미래인들이 과거 세상을 식민지로 삼고 착취하는 세계다. 이런 설정은 미래인의 시점에선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것이겠으나, 과거인들 입장에선 영문도 알 수 없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이때 과거인이 느끼게 될 괴리감을, 깁슨은 독자로 하여금 현기증의 감각으로 간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깁슨은 1948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도시인 코너웨이에서 태어났다. 일찍 SF에 빠져들었는데 12살에 이미 SF 작가가 되는 것 말고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18세 때 깁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채 그만두고 캘리포니아와 유럽을 여행하며 반문화에 푹 빠졌다. 1967년엔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그는 뒤늦게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BC)에 입학해 1977년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다니며 이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소설을 읽을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성장에 도움을 줬다. 깁슨은 SF 단편부터 쓰기 시작했다. 암울한 분위기의 그의 소설은 주류 SF 소설들과 결을 달리했다. 1984년 장편 SF인 <뉴로맨서>를 펴냈다. 즉각적이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고, 나중엔 세계적으로 7000만부가 팔린 대흥행작이 됐다.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 K. 딕 상을 받는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역대 최초로 세우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 외에도 <그 특별한 맛을 믿지 마세요>, <제로 히스토리>, <차이 엔진>, <스푹 컨트리>, <카운트 제로>, <패턴 인식> 등 수많은 책을 썼다. 깁슨은 SF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이버스페이스를 비롯해 넷서핑, 신경 임플란트 같은 용어를 만들었고, 매트릭스 같은 개념도 만들었다. 영화 ‘매트릭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등이 깁슨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가1948 ~
    440
  • 디에고 리베라

    “나는 일생에 큰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교통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를 만난 것. 비교하자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가장 많은 아픔을 겪었던 여성이자, 위대한 화가였던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는 생전 이런 고백을 남겼다. 디에고는 칼로에게 예술적 영감과 준 남편이자,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미술계의 거장으로 세계적인 예술가였던 디에고 리베라(1887~1957)다.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태어난 리베라는 유년 시절 이주한 멕시코시티에서 일찌감치 예술에 대한 재능을 드러냈다. 국립 미술학교를 마친 후 당대 예술의 중심인 유럽으로 향한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며 위대한 화가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교류하며 예술 지평을 넓혔다. 이탈리아 여행 중 접한 르네상스 프레스코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거대한 화면에서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벽화를 연구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립했다. 유럽 생활을 마치고 멕시코로 돌아온 그는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등 민중 화가들과 함께 다양한 벽화를 선보였다. 오랜 식민지였던 역사, 여러 인종이 섞인 혼종문화,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그의 벽화는 정치 이데올리기를 담은 리얼리즘으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노동자와 농민 같은 예술과 소외됐던 계층의 서사와 전통을 벽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20세기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생전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사후엔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 기억될 때가 많다.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그는 화려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의 여성 편력으로 4명의 부인을 뒀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에도 스물두 살의 프리다가 21살 연상의 못난 바람둥이에게 반할 만큼 매력이 뛰어난 예술적 소울메이트였다. 디에고와 프리다의 사랑은 11월 6일 개봉하는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에서 만날 수 있다.

    판화1887 ~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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