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e 추천 전문가 리뷰러시아 갑부와 콜걸의 '7일간 미친 사랑'...부디 애니가 아노라로 살기를오동진일촉즉발 국제 위기에 떠밀리듯 중책 맡은 여성 외교관오동진어떤 일도 일어나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차이나타운'김효정죽기 싫다고 울부짖는 '락스타 예수'… 화끈한 노래의 성찬구교범비슷한 서사, 이질적 괴수, 압도적 액션의 '글래디에이터2'김효정
arte 랭킹 - 공연·영화연극뮤지컬무용대중무용복합서커스/마술1죽여주는 이야기 [세종]2024.11.15 ~ 2024.11.17비오케이아트센터(BOK아트센터) 2한국 명작희곡 윤조병 특별전: ㅎㅇㄱㅎㅇㄱ [부산]2024.12.19 ~ 2024.12.21공간소극장 [대연역] 3제9회 늘푸른연극제, 춤추는 은빛 초상화2024.11.15 ~ 2024.11.18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4넓은 하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고양]2024.11.16 ~ 2024.11.17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5그때 우리들 언니 [구미]2024.11.21 ~ 2024.11.23소극장 공터 다 소극장 공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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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워할 때 화끈한 록 음악이 비통함을 극대화한다. 록 음악을 단지 충격요법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한 게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들도 우리처럼 느꼈을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50년도 넘은 작품인 만큼 세련미가 부각되는 공연은 아니다. “지저스, 개가 짖었으” 같은 일차원적인 유머는 진부하다. 하지만 화끈하다. 고뇌하는 예수를 앙상블이 거적때기를 휘날리며 우르르 따라다니는 장면은 마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역병을 형상화한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출연진의 가창력이 록 뮤지컬의 장점을 한껏 살린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겟세마네’와 같은 록 넘버가 오히려 출연진들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모두가 결말을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된다. 그래서 공연장 음향이 더욱 아쉬워진다. 모든 대사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송스루 뮤지컬’인데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관람 후기가 나올 정도다. 공연 중 스피커에서 ‘지지직’ 잡음이 나는 등 사소하지만 기초적인 문제도 몰입을 해친다. 공연은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에서 1월 12일까지 열린다.구교범 기자구교범arte일촉즉발 국제 위기에 떠밀리듯 중책 맡은 여성 외교관드라마상으로는 가상의 지역으로 크리건이란 이름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클라이드 해군기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클라이드 기지는 스코틀랜드 파슬레인이란 지역에 있고 영국 핵무기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서방 군사전략,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방어 전략에 매우 중요한 요충지인 것으로 보인다.넷플릭스 드라마 ‘외교관1, 2’의 핵심, 이야기의 모든 트리거는 바로 저기, 크리건에 있다.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저것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는 것을 미리 안다 해도 드라마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그렇다면 누가 그랬냐는 것으로 돼 있다. 음모의 판을 짠 사람은 누구인지, 그 미스터리를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건 끝까지 잘 모르 돼 있다. 나중에 그 정체와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야 무릎을 치게 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다.시즌1이 나온 지는 이미 꽤 오래됐고 그래서 시즌2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조차 내용이 가물가물할 수 있다. 영국(잉글랜드)의 전함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41명의 영국 해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성격이 불 같고, 제 멋대로인 데다(트럼프처럼) 독설가로 유명해서 오히려 그것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는 영국 총리 니콜 트로브리지(로리 키니어)는 기자회견에서 이건 이란의 짓이고, 그러므로 영국은 이란 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그런데 정작 긴장한 것은 이란이 아니고(이란의 런던 주재 대사는 영국 외무부 장관실에서 독살당한다.) 미국이다. 미국의 다 늙은(이건 조 바이든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레이번 대통령(마이클 맥킨)은 혹시 모르니 중동 대테러 전문가인 캐서린 케이트 와일러(캐리 러셀)를 런던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하고 총리 니콜을 이란과 충돌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아닌 밤중에 영국 대사가 된 케이트는 골칫거리 남편(본인의 외교관 경력이 탁월해 케이트를 조종하려 하는 등 배후 권력으로 나서기 때문) 핼 와일러(루퍼스 스웰)와 이혼의 갈등을 벌이면서 영국 전함에 대한 미사일 테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한다. 케이트를 보좌하는 사람은 주영 미 대사관 공관 차석이자 2인자인 스튜어트 헤이퍼드(아토 에산도)와 CIA 런던지부장인 이드라 박(알리 안)이다. 시즌 1의 마지막은 케이트 대사가 영국 외무부 장관인 오스틴 데니스(데이비드 자시)와 파리에서 프랑스 장관을 만나고 있는 사이에 스튜어트 등 대사관 직원 둘은 부쩍 수상쩍은 행보를 보이는 대사 케이트의 남편 핼의 뒤를 추적 중에 모두 폭탄 테러당하는 장면이다. 시즌2는 이제 뭐가 뭔지 너무나 꼬이고 꼬여 엉망이 된 사건, 곧 미사일 테러 문제를 넘어 누군가가 배후에서 모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연쇄 테러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인가. 시즌2의 이야기는 여기에 집중된다.시즌2는 중반까지 그 배후로 마가렛 로일린이라는 이름의, 영국 총리 고문을 지목하는 듯이 보이다가 다시 니콜 총리를 미사일 테러 자작극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몰아가는 척한다. 총리가 자국 군대를 향해 미사일을 쏘라고 했다고?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소용돌이, 그 태풍의 눈이 담고 있는 서스펜스로 돌진해 들어간다.시즌2의 중요한 인물은 미국의 부통령 그레이스 펜(앨리슨 제니)이다. 그녀는 남편의 부패 스캔들로 사임 직전이다. 레이번 미국 대통령은 차기 부통령으로 ‘런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지켜본 후 역시 여성 대통령으로 케이트 대사를 지명할 생각이다.문제는 레이번이 너무 늙어서 모든 판단을 백악관 비서실장인 빌리 아피아(나나 멘사)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삼각축, 그러니까 ‘레이번 대통령-아피아 비서실장-펜 부통령’의 삼각관계도 시즌2에서 매우 중요한 구도이다. 레이번 대통령이 너무 늙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잘 주목해야 한다. 시즌2의 마지막은 그 문제가 결국 폭풍을 일으키게 된다.드라마 ‘외교관’ 시리즈는 마치 진짜 외교관들이 출연해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고퀄(리티)’이다. 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 연방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은 잉글랜드 본토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돼 있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직접 통치하고(각 지역에 행정수반이라는 직책의 자치령 총독을 두는 형식으로) 아일랜드는 독자적 국가로 인정하되 영국 왕실을 고리로 연방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잉글랜드=영국 입장에서는 늘 북아일랜드 독립과 궁극의 아일랜드 통일 운동을 추구하는 IRA가 문제이고 또 그만큼 골칫덩어리가 바로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운동이다. 드라마상에서 영국 총리 니콜과 그의 오랜 고문인 마가렛 로일린이 처한 상황이 바로 저 스코틀랜드 분리자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스코틀랜드가 넘어가면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다 넘어간다고 그들은 본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 잠수함 기지 크리건이 중요하다.저기가 무너지면 대러시아 방어전서 무너져 러시아의 핵잠수함이 북해를 거쳐 대서양을 횡단해 바로 워싱턴 D.C. 코앞으로 밀어닥칠 수가 있게 된다. 자, 그렇다면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영국 해군의 전함을 향해 미사일을 쏜 일당은 누구인가. 러시아 용병 마피아 렌코프인가. 렌코프에게 돈과 조직을 제공한 자는 어디인가. 이란인가, 러시아인가, 영국 총리 니콜의 자작극인가. 시즌2의 결론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다 끝이 난다. 시즌 3를 기다리게 만든다.데보라 칸이 쇼 러너 감독(일부 연출, 전체 프로듀싱)으로 이 시즌 드라마의 전체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비교적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외교 공관의 실제 모습을 그럴듯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그 세트와 미장센,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의 세공력이 절대 미감을 드러낸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련된 국제정치학의 식견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시대의 백악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런던의 다우닝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미-영이라는 서방의 2대 강국이 지닌 속살에 어떤 흉터들이 숨겨져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외교라는 것, 국익이라는 것, 더 나아가 소위 국가를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정치인과 외교관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그 정체와 실체를 알게 된다. 이런 드라마는 백 퍼센트 지식인용 드라마이다. 세상에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계층은 지식인들이며 ‘외교관’은 이들을 새롭게 개화하고 교화시킬 수 있는 촉매의 드라마이다.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것은 다 하는 말들이다. 고매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척,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위해 살아간다. 그들을 국가와 민족보다 대중들, 국민들을 위해 앞장서게 하는 건 그야말로 ‘외교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다.드라마 ‘외교관’은 우리가 정치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이 항상 ‘정치적 올바름’을 지니기를 기대하기보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다른 거 다 떠나서 서스펜스(긴장감)가 최고인 작품이고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추적해 보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엄청 재미있다. 게다가 시즌별 에피소드 회차가 6회씩 구성돼 있다. 시즌3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점이 가장 좋다. 한번에 일람, 정주행하기에 제격이다. 시즌 드라마는 이래야 한다.[외교관: 시즌 2 | 공식 예고편 | 넷플릭스]오동진 영화평론가오동진arte어떤 일도 일어나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차이나타운'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이 개봉 50주년을 맞았다. 가디언지는 5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이제껏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능가하는 영화는 탄생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다시금 영화에 대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Chinatown at 50: has there been a greater screenplay since?” 참조)아카데미의 열 한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차이나타운>은 개봉 당시에도 평단과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로저 이버트는 그의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 이 작품을 올리면서 “잭 니콜슨의 연기와 로버트 타운의 각본은 <차이나타운>을 단순한 범죄 장르 이상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영화는 오리지널 느와르 영화의 교본이 되었다”고 극찬했다.<차이나타운>은 의뢰인들을 상대로 그들의 배우자의 불륜 관계를 쫓아 돈을 버는 사립 탐정, ‘제이크(잭 니콜슨)’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그는 한 부인의 의뢰로 그녀의 남편이자 수력발전의 권위자인 홀리스 멀웨이가 불륜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하지만 곧 멀웨이의 진짜 부인인 ‘에블린(페이 더너웨이)’이 나타나면서 의뢰인이었던 멀웨이의 부인은 가짜였음이 밝혀진다. 얼마 후 멀웨이가 익사한 채 시체로 발견되고 제이크는 이 사건을 단순 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의심한다. 그는 에블린의 결혼 전 성이 크로스였으며 에블린의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 ‘노아 크로스(존 휴스턴)’가 LA의 물을 함께 소유했던 전 비즈니스 파트너였음을 알아낸다.에블린은 제이크에게 멀웨이가 만나던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고 그는 멀웨이가 만나고 있던 여자가 에블린의 동생 캐서린임을 밝혀낸다. 이에 제이크는 사건이 치정 관계에 의한 것으로 결론짓고 멀웨이를 죽인 범인으로 부인 에블린을 지목한다. 하지만 진실은 멀웨이의 동료였던 크로스가 못 쓰는 땅을 헐값에 사들인 후 LA의 물을 그쪽으로 빼돌려 옥토로 만든 후 비싼 값으로 팔려는 계획을 세웠고, 멀웨이가 그 사실을 눈치채자 그를 살해한 것이다. 또한 사건의 배후를 쫓던 제이크는 혈육이 없던 크로스가 양녀로 들인 딸이 에블린이라는 것과 크로스가 에블린을 겁탈했고 그렇게 생긴 딸이 캐서린이었다는 비극적인 사실까지 마주하게 된다.이 복잡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 ‘제이크’는 궁극적으로 사건과 연계한 모든 음모를 파헤치지만,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에블린을 구해내지는 못한다. 영화는 좌절과 무력감으로 망연자실한 제이크를 위로하는 친구의 대사로 끝이 난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잖아 (Forget it Jake, This is Chinatown).”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인 ‘차이나타운’은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제이크 친구의 말처럼, 차이나타운은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다. 제이크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만, 비극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영웅이다. 왜냐하면 그가 목도한 악인, 그리고 그들의 죄악은 너무나도 거대하기 때문이다.멀웨이와 크로스는 LA의 시민들로부터 물을 빼앗아 사유화하고 그것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는 탐욕스러운 존재일뿐만 아니라 딸을 겁탈하고 낳은 그 딸마저 소유하려는 절대 악의 주체로, 이들을 이겨 낼 영웅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1970년대 중반에 개봉한 <차이나타운>은 LA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지극히 미국적인 ‘차이나타운’이라는 공간을 통해 1970년대의 미국, 즉 닉슨의 워터게이트(영화의 메인 컨셉인 ‘물’의 은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와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과 배신으로 잠식당한 미국 사회를 그려냈다.영화 <차이나타운>이 현재까지도 가장 잘 쓰인 각본으로 숭배받는 이유는 잘 짜여진 이야기 구성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보여준 당시 사회의 이야기적 은유, 그리고 그것들을 교차시킨 방법일 것이다. 난세에서 영웅은 탄생하지 못했지만, 명작이 탄생한 것은 분명하다.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김효정arte러시아 갑부와 콜걸의 '7일간 미친 사랑'...부디 애니가 아노라로 살기를2024년 제77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는 막상 국내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고 그것은 어쩌면 현재의 한국 사회가 다소 보수화된 경향(정치와 종교적인 면에서) 탓일 수 있다. 한국에 오면 세계 유수의 영화들이 종종 빛을 잃을 때가 있다.‘아노라’는 전반 1시간이 특히, 아주 많이, 야하다. 외설적이라는 일부 지적은 비교적 정당하다. 주인공 애니(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아노라'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를 비롯해 극중 인물 여성들은 1시간 내내 조각 케이크 만한 T팬티만을 걸친 채 나온다. 이들은 이른바 랩 댄서라 불리는 스트립 걸들이다. 섹스 바의 플로어에서 스트립 봉춤을 추는 것은 물론 VIP룸에서 1인 남자 손님을 대상으로 몸을 밀착해 가며 근접 섹스 행위를 춤으로 보여 주는 서비스를 한다. 당연히 2차를 나가 매춘도 한다. 주인공인 애니(마이키 매디슨)는 러시아 황태자(엄청난 거부의 아들)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그렇게 만났고 둘은 전반부 1시간 내내 다양한 체위로 격렬한 섹스를 나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잠깐 의심한다. 이 영화, 섹스 영화야?아노라, 애니가 이반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만나 마음껏 자신의 몸을 갖게 하고 돈이나 벌 심산이다. 애니는 액면가 그대로 그냥 창녀이다. 이반이 일주일 내내 섹스하는 값으로 만 달러(약 천5백만원)를 제안하자 그녀는 만5천달러로 하자고 한다. 그러자 이반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너 정도면 3만을 불렀어도 준다고 했을 거야, 라고 말한다. 이 둘은 친구들을 만나 호텔 스위트룸을 돌아가며 술과 약, 섹스 파티를 즐긴다. 이들에게, 특히 이반 같은 돈 많은 젊은 애들에게는 미래 따위는 없다. 그저 여자를 데리고 실컷 노는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둘, 그러니까 이반과 애니가 충동적으로 라스베가스에서 결혼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다른 궤도를 달린다. 러시아에 있는 이반의 부모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자기들 똘마니, 토로스(카렌 카라굴리안)와 가닉(바체 토브마시얀)에게 이들 결혼을 무효화 시키라고 지시한다. 둘은 이고르(유리 보리소프)라는 또 다른 러시아 건달을 데리고 일을 시작하지만, 이반은 줄행랑을 치고, 애니는 한 마디로 ‘생지랄’을 떤다. 이 과정에서 가닉의 코는 부러지고 이고르도 목을 물린다.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남자들을 향해 애니는 이들이 자신을 강간한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까지 한다. 깡패 셋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될 만큼 ‘막돼먹은’ 여자에게 쩔쩔매며 이반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그렇게 후반부 1시간 동안 코미디 열차를 타기 시작한다.언뜻 보기에 영화 ‘아노라’는 로코(로맨틱 코미디)다. 만약 그런 ‘하찮은’ 장르라면 칸에도 어울리지 않고 무엇보다 황금종려상은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칸은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그건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멜로의 공식, 곧 디퍼런스(difference)를 완전히 뒤집고, 비틀어 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산 멜로영화는 원칙이 ‘차이’다. 남자는 돈이 많고 여자는 거리의 여자거나(‘프리티 우먼’), 남자는 중산층 계급의 남자지만 여자는 전철 역 토큰 판매원이다(‘당신이 잠든 사이에’). 그것도 아니면 남자는 공화당 대통령인데 여자는 진보적인 환경운동가다(‘대통령의 연인’). 할리우드 멜로 영화는 이렇게 처음에 남녀 간 큰 격차를 두게 하고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서서히 그것을 좁히게 만든다. 그래서 엔딩은 결국 둘이 그 차이를 없애고 사랑에 골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남녀는 아무리 큰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거나 서로가 서로로 변화해서 완전한 사랑을 성공시킴으로써 모두를, 특히 관객들에게 행복을 준다. 이것은 일종의 마취제와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랑 이야기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신데렐라 신드롬’이 실현되는 경우도 있다. ‘왕자와 거지’ 이야기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로또를 맞추는 사람이 있긴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대중에게 약간, 그것도 아주 약간 열어 준 틈새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남녀간 사랑이야기의 실제는 계급과 계층, 신분의 철창을 뛰어 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영화 ‘아노라’의 아노라가 결국 깨닫는 것은 자신의 처지가 결코 이 물신주의의 극치인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처음에 그녀 자신이 원한 것이기도 하다. 애니같은 여자는 벽장에 넣어 놓고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섹스 토이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몸을 파는 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상부구조가 만들어 놓은 관념은 돈이 없어도 도덕으로 지켜야 할 것이 육체적 순결이라는 것이다. 몸을 지키지 않는 여자 혹은 남자는 자본주의가 언제든 가차없이 버릴 수 있는 ‘물건’일 뿐이다. 이반은 부모의 자가용 비행기 트랩을 올라 가기 전에 애니, 아노라에게 말한다. “일주일 동안 고마웠어.”영화 ‘아노라’는 할리우드가 파놓은 ‘차이의 미학’이라는 허울좋은 덫에 빠지지 않는다. 처음의 차이를 끝까지 가져 간다. 이반과 아노라는 차이가 나는 커플로 만나 차이가 나는 커플로 끝이 난다. 애니는 자신과 같이 러시아계인 이고르와 잠깐 어떻게 해볼까도 생각하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이고르는 애니가 자신의 러시아 본명인 아노라로 불리는 것을 왜 그토록 싫어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 커플도 만약 연애를 시작한다면 또 다른 차이점을 갖고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감독인 션 베이커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애니가 아노라로 되지 않는 이상 그녀의 창녀 ‘짓’, 그 계급과 신분의 허울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찾는 것, 자신의 계급계층적 아이덴티티를 자각하고 획득하는 것이야 말로 현대사회에서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진실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그런 점을 알아 챈, 밝은 눈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것으로 보인다. 차이를 차이로 끝내는 멜로영화는 없다. 상업영화는 그러지 못한다. 영화 ‘아노라’는 그런 면에서, 아무리 전반부 1시간동안 벌거벗은 섹스 신이 즐비하게 나온다 한들, 상업영화나 포르노가 아니다. 이건 철저하게 비상업 독립영화이며 일정한 정치적 메타포를 지니고 있는 작가주의 예술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인 아노라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근데 그것도 할리우드식 판타지일 수 있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 ‘현실적인 인간주의’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노라’는 대단한 영화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감독 션 베이커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배급사인 유니버설이 ‘위키드’ 개봉에 ‘몰빵(?)’을 했다. 때문에 ‘아노라’ 배급은 손을 놓은 경향을 보인다. 눈밝은 관객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괜한 추천을 하는 식으로 평론이 눈치 없이 끼어들 계제는 아닌 듯 싶다. 관객들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오동진 영화평론가오동진arte"로마 냄새 물씬 풍기며"…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컴백리들리 스콧(86)의 역작 '글래디에이터'(2000)가 무려 24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왔다.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를 소재로 한 글래디에이터는 실감나는 전투신과 직관적인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력 등 삼박자를 갖추며 오스카에서 5개 부문 상을 휩쓴 대작이다.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달 화상간담회에서 "왜 이렇게 (속편 제작이) 오래걸렸냐는 말이 나오는데, 후속편을 쓰는 건 정말이지 위험한 작업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위해 시간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로마 재현한 웅장한 스케일…몰입도 높였다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글래디에이터2는 '속편 징크스'에서 자유롭다고 보긴 어렵지만, 꽤나 선방한 작품이었다. 전편과의 긴 공백 덕분에 신선하게 느껴지는 게 강점 중 하나였다. 설정과 스토리 면에서 전편과 유사한 부분이 꽤 있지만, 24년이라는 시간은 전편의 그림자를 지워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새 영화는 1편의 주인공이자 전설적인 검투사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죽음으로부터 20여 년 후, 루실라(코니 닐슨)의 아들 루시우스(폴 메스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코니 닐슨은 두 편 모두 등장해 두 영화의 연결고리가 되고, 로마의 공화정 체제를 꿈꿨던 막시무스는 영화 중간중간 플래시백으로 등장해 영화의 세계관을 완성한다. 영화는 대규모 해상전이 벌어지는 오프닝부터 관객을 로마 시대로 데려간다. 당시 시대상에 걸맞게 여기저기 피가 낭자하고, 숨통을 조이는 전투가 실감나게 그려졌다. 제작진은 당시 로마의 실제 복장과 무기, 전술 등을 고증해 영화에 반영했으며 실제 콜로세움의 60% 크기의 세트를 직접 지었다고 했다.제작비 약 3억 달러가 들었다는 영화는 150여 분의 러닝타임 내내 화려한 볼거리가 지속된다. 스콧 감독은 "천년도 더 지난 로마 시대의 냄새가 날 정도로 당시 로마 건축, 의상, 생활, 의식 모든걸 세세히 조사했다"며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에서 산 채로 잡아먹힌 역사적 사실이 있지않나. 그런 끔찍함을 재현해냈다"고 설명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검투사들의 대결은 영화의 백미다. 이번 편에서는 CG로 구현한 괴물 원숭이와의 전투, 상어들이 가득한 해상 모의 전투 등 판타지적 요소도 포함되며 극적 재미를 더했다. 캐릭터 설정은 다소 아쉬워전편과 가장 차이 나는 점은 캐릭터다. 1편에서는 카리스마를 넘어 신비롭기까지한 막시무스와 절대 악안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의 선명한 선악 구도로 이뤄져 있다. 이번 편에서는 팽팽한 선악구도가 등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해킨저)가 폭군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전 편의 코모두스급 존재감이나 역량을 보이진 않는다.대신 신념과 가치의 대립이 두드러진다. '강한 자가 지배해야한다'는 검투사들의 주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와 '시민 모두를 위한 나라'를 외치는 루시우스의 대립은 현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효율성과 민주성의 대립을 보여준다.막시무스와 루시우스는 검투사로 생사를 걸고 싸우다 인기를 얻고 시민의 영웅이 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막시무스에 비해 루시우스는 보다 현실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인물이다. 루시우스는 초반에 로마에 대한 적개심으로 분노에 가득찬 결투를 하지만, 점차 자신을 둘러싼 과거의 비밀을 알게되면서 '대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로마에 대한 그의 심리 변화는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새 영화가 1편의 '막시무스급 신드롬'을 일으키진 못할 수 있지만 '아바타', '듄' 시리즈에 이어 영화관에서 꼭 봐야할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블록버스터가 귀한 지금의 영화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13일 개봉. 상영 시간 148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최다은arte비슷한 서사, 이질적 괴수, 압도적 액션의 '글래디에이터2'2000년에 개봉한 <글래디에이터>는 리들리 스캇 감독의 역작이었다. 이미 <블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대작들로 이름을 알린 그였지만 스캇은 무려 4억5500만달러(제작비 약 1억달러)를 벌어들인 이 작품으로 다시금 상업영화의 거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글래디에이터>는 2000년도에 개봉한 작품 중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했고, 세계 각지에서도 이른바 ‘막시무스’ 신드롬을 만들어 내며 흥행을 넘어선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그리고 무려 24년이 흘러 그 전설이 귀환했다 (속편은 사실 2001년부터 기획이 되어왔지만,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에 저작권을 팔게 되면서 제작이 지연된 바 있다). 이번 속편은 아버지 막시무스의 운명을 따르게 되는 아들, ‘루시우스 (폴 메스칼)’가 중심이 된다.이야기의 배경은 막시무스의 죽음으로부터 20년이 흐른 시점. 로마는 현재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의 폭압 아래 식민지를 늘려 배를 불리려는 탐욕만 남은 지옥이다. 그들은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 장군을 앞세워 누미디아를 점령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어린 시절에 왕위 다툼의 희생을 피하기 위해 위배 당한 막시무스의 아들, ‘루시우스’는 아내 아리샷과 함께 누미디아의 병사로 살아가고 있었고, 이들은 로마의 침략에 맞서 싸우게 된다. 루시우스는 전쟁 중 아내를 잃고 누미디아는 패전하여 그 결과로,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는 아버지 막시무스가 그랬듯, ‘글래디에이터’가 되어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귀환하게 된다.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글래디에이터 2>는 많은 변화와 (기술적) 진보를 보여준다. 일단 영화는 시간 대비를 감안하더라도 전편보다 훨씬 더 커진 스케일을 자랑한다. 전편의 3배인 무려 3억1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번 속편에서는 글래디에이터 시리즈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이 대폭 증가했다. 전투 시퀀스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글래디에이터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 역시 코뿔소부터 CGI로 만들어진 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이번 속편 제작의 상당한 노력이 이 전투 장면들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고 배를 띄워 치르는 해상전은 단연코 영화의 메이저 스펙터클 중 하나다.다만 이렇게 (스케일면에서 그리고 연출적인 집중도면에서) 공을 들인 전투씬들이 최종적으로 이번 작품의 완성도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가령 CGI로 탄생한 ‘살인 원숭이’ 같은 경우 지극히 판타지적인 창조물로 <글래디에이터>의 장르적(비판타지, 시대극)인 전제와는 맞지 않는 존재다.<글래디에이터>의 중심인물들, 즉 막시무스와 루시우스는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임에도 이 외의 인물들과 사건은 철저히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에 기대고 있는 시대극에서 기술적으로 탄생한 괴수는 이질적이다. 이렇게 증가한 전투 장면들, 그리고 스펙터클의 요소는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부실함을 초래했거나 혹은 부실한 이야기의 대안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가령, 영화는 루시우스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왕위를 계승 받을 루시우스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될 것이 두려운 어머니가 어린 그를 어딘가로 보내 버리는 짧은 시퀀스 이외에 그가 어떻게 누미디아에 정착했으며 그곳의 병사가 되었는지는 과감히 생략된다.또한 이후 그가 노예로 팔려 가고 나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같은 과정을 겪은 전편의 막시무스 서사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속편은 주인공만 바뀐 전편의 이야기, 그리고 전편과 비슷하지만, 스케일과 기술적인 진보로 더 비대해진 전투 장면들만 반복되는 것이다.어찌 보면 전편보다 속편에 더 큰 기대를 하는 것은 감독의 잘못이라기보다 관객의 잘못이다. 그리하여 전설이 된 <대부 2> 정도를 제외하면 속편이 전편을 이길 수 없다는 속설은 사실상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래디에이터>는 이러한 속편의 딜레마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글래디에이터> 시리즈 (3편 제작이 결정되었다) 의 위엄을 상기시키는 초반 전쟁 장면, 그리고 오프닝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마지막 전쟁 장면 등은 필히 스크린으로 봐야 할 광경으로 언급하고 싶은 요소다.스콧의 다음 작품은 팬더믹 기간에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캐릭터 스터디로 전해진다. <글라디에이터> 와 같은 스케일 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지만 막시무스, 리플리, 델마/루이스 같은 위대한 캐릭터를 만들었던 그가 분명 빛을 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86세를 맞은 감독 리들리 스캇의 행보는 그렇기에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듯하다.▶▶[관련 리뷰] "로마 냄새 물씬 풍기며"…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컴백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김효정arte미국 군가를 틀어놓고 무대를 점령해버린 '성조기 파드되'갈라는 명작의 일부들을 발췌해 꾸민 무대다. 종합 선물세트 같아서 장단점이 명확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지만 대단원을 향해 가는 긴장감을 맛보기가 어렵다. 발레 갈라도 그렇다. 미국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가 내한 갈라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했을 때 유명 고전 발레의 하이라이트를 짜깁기해서 색다른 모습을 제시해 줄 수 있겠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던 이유다. 이프로덕션이 지난 2022년에 이어 세번째로 기획한 갈라 공연 <더 나잇 인 뉴욕>이 지난 9~10일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펼쳐졌다. 초청된 ABT 무용수들은 ‘확실한 한 방’을 선사해줬다. <더 나잇 인 뉴욕>이라는 제목을 달고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은 자유로움과 열정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발레리노들은 단단한 코어 근육을 자랑하며 용수철처럼 뛰어올랐고, 중심 축이 흔들리지 않게 착지했다. 격정적으로 춤을 추다가 어느 한순간 정지화면처럼 온 몸의 근육을 조여 멈추는 안무 구성도 신선했다. 하늘하늘, 흐르는 물처럼 움직임을 이어가는 유럽식 발레에 익숙했던 발레 팬들에겐 새로운 볼거리를 안겨준건 확실해보였다.백미는 1부의 마지막인 <성조기 파드되>였다. 안무가인 조지 발란신은 1958년 만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스토리는 없고, 그저 USA'라고 짤막하게 답했다고 전해진다. 높은 저작권료 때문에 이 파드되를 국내에서 접하기에도 쉽지 않다. 서양인치고는 작은 두 남녀 무용수가 미국 군가에 맞춰 등장했는데 놀라울 정도의 무대 장악력을 보였다. 발레리노 제이크 록샌더는 갈라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척자 정신을 담고있는 뉴욕이란 도시를 발레로 전달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윙크와 깜찍한 경례와 같은 무대 매너와 함께 힘찬 도약과 손발끝까지 터져나가는 에너지를 모두 보여줬다. 마치 발에 스프링이 달린듯한 모양새로 군가의 박자를 가지고 노는듯 했다. 파트너였던 발레리나 엘리자베스 베이어 역시 단신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유연한 팔다리 동작과 현란한 스텝에 무대가 꽉 차게 느껴졌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무대였지만 두 무용수가 즐기고 있는 모습을 통해 미국 발레의 자유로운 표현과 스타일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즐겁고 신나는 무대 중간중간 고전 발레의 하이라이트가 채워졌다. 수석무용수 클로이 미셸딘이 보여준 백조의 호수 '흑조 파드되', 최근 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코치로 나서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발레리노 한성우의 지젤 속 파드되는 고전미를 챙기면서도 아메리카발레시어터만의 스타일을 입혔다.미셸딘의 상체 동작과 흔들림 없는 균형 감각은 유럽 발레의 튀튀(발레 무용수의 치마)보다 반지름이 짧은 치마였기에 더욱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였다. 한성우는 서양 무용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피지컬과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더 나잇 오브 뉴욕'은 고전 발레 기법과 컨템퍼러리 서사가 결합해 화려한 볼거리와 깊이를 챙긴 영리한 갈라 공연이었다.이해원 기자이해원arte연극조엘 폼므라, 이야기와 전설 인간은 어떻게 로봇과 공생할까 … 천재 극작가가 그린 미래의 모습“우린 이제 로봇이란 말 안 써, 인공 인간이라고 하지.”무대 위 아이들은 로봇을 인공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로봇을 기계의 집합체로 보는 시대는 과거이며, 인간들과 로봇은 이미 어떠한 관계를 형성한 존재란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프랑스 연극 <이야기와 전설(연출·각본 조엘 폼므라)>은 로봇과 함께 하는 인간들의 일상을 청소년의 관점에서 관찰하도록 만들었다.연극은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과 AI휴머노이드(사람처럼 생긴 인공지능 로봇)의 일상적 관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연극 속에서는 10가구당 1개의 휴머노이드가 있다고 가정한다. 로봇은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거나, 요리와 가사를 돕거나, 말동무가 돼 준다. 인간 청소년들은 로봇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려고 시도하고, 감정 조절이 미성숙한 관계로 로봇에 심하게 의존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마치 10년 안에 도래할 우리 일상을 미리 엿본 것 같았다.연출가 조엘 폼므라(61)는 LG아트센터 대극장 중 절반인 500석만 관객이 들도록 했다. 마치 거실의 쇼파에서 무대를 바라보듯, 몰입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절제된 무대에서 10명의 배우들은 속사포 같은 대사를 치며 110분간 극을 이어갔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혼란한 성 정체성, 부모와의 아슬아슬한 관계, 죽음, 진실과 거짓을 탐구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11개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쌓였고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거리의 소년들은 과거 욕정을 느꼈던 상대가 여성의 모습을 한 로봇이었단 걸 알고 수치심에 젖어있다. 그들은 길에서 마주친 다른 여자아이에게 “로봇이냐, 아니냐”를 따져 묻는다. 한편 십대를 지나 어른이 돼야 하는 한 소년은 배려심 많았던 돌봄 로봇을 다른 가정에 팔기로 한다. 그 로봇을 가사도우미로 쓰기 위해 한 가족이 방문하고, 그들은 말기암으로 곧 세상을 떠날 엄마 또는 아내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로봇을 살지 말지 망설인다. 또, 불치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청소년이 평소 동경하던 로봇 아이돌을 만나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아이돌로 활약하던 로봇이 더이상 상품의 가치가 없기에 곧 폐기된다는 로봇 제조사의 결정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는 로봇에 사랑을 고백한 아이가 알지 못하도록 봉쇄됐다. “영원히 너와 함께 하겠다”는 로봇의 말은 거짓이지만 아이는 무한한 감동을 받고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성장통을 앓는 10대 소년 소녀들은 곳 로봇과 인간을 둘러싼 냉엄한 진실에 눈뜨게 될 것이고 고통을 겪게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인간과 인공 인간이 공존하는 생활이 디스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원히 행복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작품에 쓰인 노래도 일품이었다.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가수 달리다의 ‘무대에서 죽고 싶다’를 비롯한 유명 프렌치 팝송의 가사(자막으로 안내된다)는 관객이 작품에 완전히 녹아들게 만드는 탁월한 장치였다. 연극의 제목이 ‘이야기와 전설’이기에 아름답고 환상적인 전개를 짐작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러기에 작품이 던지는 ‘있을 법한’ 사실적 묘사가 더욱 따가웠다. 폼므라를 어느 정도 아는 관객이었다면 이 작품의 제목이 의도하는 바를 알아차렸을 것 같다. 그는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동화에 기반해 현대 사회를 비춰보는 3부작 작품(빨간모자, 피노키오, 신데렐라)으로 유럽 연극계에서 유명하다. 폼므라는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브룩이 “이 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연출가”라고 소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기도 하다. 폼므라는 연극에 투신한 이래 33년간 프랑스의 최고권위의 공연예술상인 몰리에르상을 9번이나 받았다.그의 작품은 과거 한국에 몇 차례 소개된 적은 있지만, 자신의 극단 루이 브루이야르 컴퍼니와 방한해 공연을 올린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야기와 전설>은 지난 2020년 몰리에르상에서 최우수작품·연출·극작·효과상 등 4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한꺼번에 오른 바 있다. 이해원 기자이해원arte브리저튼처럼 바스를, 갱스터처럼 버밍엄을 …영국 여행의 신세계“영국은 작지만 강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너리, 해리 포터, 베컴의 왼발이 있습니다. 오른발도 있고요.” 21년 전 겨울 개봉해 이제는 크리스마스 고전 영화가 된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이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휴 그랜트 분)가 미국 대통령을 향해 던지는 대사다. 자신을 얕잡아보던 이를 향한 통쾌한 일격이자, 영국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문장. 윈스턴 처칠과 데이비드 베컴을 빼면 공통점이 있다.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가을을 부지런히 통과하고 있는 영국을 찾았다. 버밍엄, 바스,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무심코 영화 대사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약 지금 러브 액추얼리를 다시 만든다면 영국 총리의 대사에 들어갈 만한 명작들이 지금도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흥행 기록을 다시 쓴 드라마 ‘브리저튼’부터 ‘2000년대의 대부’라는 극찬이 쏟아진 시리즈물 ‘피키 블라인더스’,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미션 임파서블’의 시작점,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이 된 ‘브리짓 존스’ 시리즈까지. 이들 모두 영국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런던은 물론 기차로 1~2시간이면 로맨틱한 영국 중세 시대로, 산업혁명 시기 탐욕의 전쟁터로 떠날 수 있다.이제 이 작품들이 만들어진 현장을 따라 여행하며 명장면 속으로 들어가볼 순간이다. “레디, 액션!”산업혁명과 갱들의 역사 속으로 ‘피키 블라인더스’의 버밍엄‘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하네.’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도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부심이 이해가 간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18세기 산업혁명의 무대가 바로 버밍엄이기 때문이다. 석탄, 석회암, 철광석 등 지하지원이 풍부한 덕분이었다. 버밍엄을 중심으로 인근 소도시인 더들리, 울버햄프턴까지 하나의 거대한 산업지구가 형성됐다. 공장은 멈출 줄 몰랐고, 전국 각지로 이어지는 철길에는 밤낮없이 기차가 오갔다. 오죽했으면 ‘블랙 컨트리’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산업혁명 당시 제철공장의 굴뚝에서 쉴 새 없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광경이 검은 세계와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도시 전역에 촘촘한 거미줄처럼 운하가 흐르는 것도 이때의 흔적이다. 버밍엄 내운하 길이를 더하면 56㎞에 달한다. 이는 ‘운하의 도시’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 길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19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도시는 점차 쇠락하는 듯 보였다. 산업 구조가 바뀌고, 젊은 노동자들이 떠나면서다. 그러나 2013년 뜻밖의 쇠퇴한 도시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작품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880~1920년대 버밍엄에서 활동한 범죄 조직 피키 블라인더스의 활약을 그린다. 조직을 이끄는 쉘비 가문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벌이는 암투, 이들을 견제하는 뒷골목 세력과 경찰 조직 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느와르, 범죄, 정치까지 어우러진 ‘영국판 야인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인기나 완성도에서 ‘대부’와 비견될 정도다.드라마는 당시 버밍엄의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품 속에 도시의 역사가 살아 숨쉬니, 버밍엄 사람들의 자랑일 수밖에. 덕분에 도시 곳곳에서 작품 속 캐릭터 벽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키 성지순례’를 온 시청자들이 헌팅캡을 쓰고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 역시. 드라마가 100년 전 공간을 생생히 담아낸 비결이 궁금하다면 ‘블랙 컨트리 리빙 박물관’으로 향하면 된다. 산업혁명 당시의 버밍엄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둔 버밍엄의 민속촌과 같은 곳이다. 건축물과 골목의 디테일이 얼마나 뛰어난지,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든다. 드라마 명장면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작품의 팬이라면 골목마다 ‘아, 여기!’ 하며 반가운 탄성을 지를 것이다. 짜릿한 중세의 로맨스 속으로 ‘브리저튼’의 바스‘지금 브리저튼 세트장 속에 들어온 건가?’ ‘브리저튼’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바스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드레스와 턱시도였다면 드라마 장면과 다를 바 없을 듯했다. 거리에 지어진 지 200년이 훌쩍 넘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줄지어 있는 덕이다. 교외에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바스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다.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브리저튼’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전 세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1800년대 초반의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시대극이다.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간직한 촬영지를 찾던 제작진의 눈에 띈 곳이 바로 바스였다. 바스에는 18세기 조지 왕조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고스란히 보존된 채 모여 있다. 역사적인 건축물의 보존 상태가 뛰어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 여기에는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도시의 고전적인 풍경을 간직하기 위해 개인 주택의 색을 바꾸는 것마저 자제할 정도다.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돌로 포장돼 있고, 가로등도 19세기에 만들어진 그대로다. 이 때문에 창작진은 현대적인 간판을 나무로 가리는 약간의 트릭만으로도 중세를 그대로 재현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인공적인 세트를 제작해서는 채울 수 없는 1%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바스였던 셈.‘브리저튼’에 제대로 과몰입하고 싶다면 ‘브리저튼 워킹 투어’에 참여하면 된다. 가이드와 함께 약 두 시간 동안 바스를 걸으며 드라마 촬영지를 중심으로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는 투어다. 이 투어의 이색적인 점은 배경음악이 있다는 것. ‘브리저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는 바로 음악이다.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일리시, BTS까지 최신 팝을 실내악 오케스트라로 변주해 시대극에 어울리는 BGM으로 탄생시켰다. 투어 참가자들은 블루투스로 연결된 헤드폰을 통해 가이드 겸 DJ가 들려주는 OST를 감상하며 도시를 돌아본다. 브리저튼 신드롬을 탄생시킨 시즌1 주인공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은 무척 흥미롭다. 다프네-사이먼 커플이 산책하며 말다툼하던 골목길,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던 공간, 무도회가 열리는 레이디 댄버리의 저택, 페더링턴 가문의 저택 등 드라마 시청자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장소들이 이어진다.잊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은 홀본 박물관. 시즌 1에서 레이디 댄버리의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가 바로 홀본 박물관의 정원이다. 18세기 호텔로 문을 열어 실제로 사람들이 무도회를 즐긴 역사적인 건물이다. 1916년에 박물관으로 단장하면서 윌리엄 홀번의 컬렉션 전시를 시작했다. 초상화, 도자기, 보석 등 18세기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바스 토박이’가 투어를 진행하는 덕분에 촬영 비하인드도 들을 수 있다. 브리저튼 촬영 현장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 하나를 가릴 정도의 거대한 천을 동원했고, 촬영팀 역시 바스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부금을 냈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투어가 끝나면 바스 거리가 드라마에서처럼 낭만적인 공기로 차오른다. ‘미션 임파서블’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탄생지, 런던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아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영화 촬영지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서 깊은 두 편의 프랜차이즈 영화 ‘미션 임파서블’과 ‘브리짓 존스’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촬영됐기 때문이다. 고전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두 시리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런던 한 바퀴’ 완성이다. 그 시작은 기차역부터다. 영화 해리포터 속 ‘9와 3/4 승강장’으로 유명한 킹스크로스역이 있다면, ‘미션 임파서블’에는 리버풀스트리트역이 있다. 1996년 첫 편을 시작으로 20여 년을 이어온 시리즈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를 무대로 아찔한 스턴트를 선보이는 에단 헌트(톰 크루즈 분)의 고생담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공중전화에서 지령을 받는 장면, 미션을 수행하다 죽은 줄 알았던 동료 짐 펠프스를 마주치는 장면이 모두 리버풀스트리트역에서 촬영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역의 간판은 화려해졌고 공중전화 부스는 현금인출기로 바뀌었지만 작품의 팬이라면 영화 속 그 장소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는 버로우 마켓에서 시작한다. 과일부터 유제품, 차, 수산물과 육류까지 각종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장이다. 공장식으로 대량 유통하는 제품이 아니라 생산자가 소규모로 생산해 직접 판매하는 곳이다. 신선한 오이스터와 햄, 치즈 등으로 배를 채웠다면 브리짓의 흔적을 찾아볼 시간. 시장 초입에 있어 바로 눈에 띄는 건물은 브리짓(러네이 젤위거 분)이 사는 집으로 등장한 곳. 영화 속에서 브리짓과 로맨스를 펼치는 두 남자 마크(콜린 퍼스 분), 다니엘(휴 그랜트 분)과의 에피소드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1편에서 두 남자가 브리짓을 두고 우스꽝스러운 결투를 벌이는 명장면 역시 이 골목에서 촬영했다. 영화 제작진은 촬영 당시 시장 입구를 3일 동안 통제해야 했다. 어떤 촬영인지 궁금해하는 상인들에게 ‘버로우 마켓에 대한 진지한 다큐멘터리’라고 속인 덕에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버밍엄·바스·런던=김은아 한경매거진 여행팀 기자김은아arte아마존 7개월 로케하고 처참하게 실패한 코미디 영화 '아마존 활명수'오늘도 만년 과장, 진봉은 키보드 위에서 숙면에 빠져 있는 중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오늘 꿈에서는 뜬금없는 아마존 정글이 펼쳐지고, 진봉이 그 한 가운데에 조난 당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가다가 낮잠 삼매경에 빠져 있는 진봉을 발견한 이사는 늘 그렇듯 폭격을 쏟아붓고, 진봉은 잠에서 깬다. 분노한 이사를 눈앞에 두면서도 진봉은 안도한다. 그래, 꿈이지. 그러나 진봉의 이 황당한 ‘아마존 나이트메어’는 머지않아 현실이 된다.일단 제목부터 압도적인 코미디적 기운을 뿜어내는 <아마존 활명수>는 부채표 활명수 (관계가 없지는 않으나) 가 아닌, 어쩌다 아마존에 파견되는 (전) 활의 명수, 조진봉의 인생 역전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는 국가대표 양궁 선수 출신의 ‘진봉’ (류승룡)이 회사가 기획하고 있는 금광 채굴 프로젝트를 위해 볼레도르로 파견되면서 시작 된다. 금광 채굴을 허락 받는 대신, 진봉은 볼레도르의 선수들을 곧 한국에서 열릴 양궁세계대회에서 메달리스트로 등극시켜야 한다.코미디 영화라는 정체성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아마존 활명수>의 이야기적 설정은 다소 과하다. 특히 금광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양궁을 가르쳐야 한다는 설정, 그리고 이를 위해 볼레도르의 원주민을 트레이닝시키게 되는 계기 등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코미디 장르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과장’이 공감을 흐릴 정도로 과도한 케이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것은 ‘아마존’이라는 뜬금없는 설정이 구현되는 실제 아마존 배경이 이 영화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국 영화에서 미지의 나라가 종종 세트장이나 한국의 시골 등에서 재현되는 것이 관습이었다면 <아마존 활명수>에서 펼쳐지는 아마존의 가공되지 않은 스펙터클은 감탄스럽다. 로케이션의 리얼리티를 살려내는 방식에 있어서 영화를 연출한 김창주 감독의 장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의 전작 <발신제한> 에서 부산이 그러했듯, 김창주 감독은 지역색과 공간이 가진 고유한 지형, 그리고 비주얼을 첨예하게 잡아내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위해 그는 사전 답사를 포함 7개월의 브라질 로케이션 촬영을 준비했으며 제작, 촬영, 미술, 그립, 조명 등을 포함 40여 명의 현지 스탭들을 기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 스탭들의 이름은 이러한 노력의 증표이자 자취이다.문제는 로케이션의 매력을 듬뿍 담았던 아마존 시퀀스들이 끝난 이후다. 세계양궁대회에 도전할 3명의 원주민이 한국으로 입성하면서 펼쳐지는 영화의 중, 후반부는 다른 문명에서 온 외국인이 일으킬만한 지극히 상투적이면서도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가령 이들이 호텔에 들어가는 법을 몰라 벽을 타고 올라가는 설정, 그들을 납치한 조폭 멤버 중 가장 뚱뚱한 조직원을 원주민이 멧돼지를 달랠 때 사용하는 휘파람을 이용한다는 설정은 코믹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하다.결론적으로 <아마존 활명수>는 실패한 코미디이다. 적어도 20대 이상의 성인 관객들에겐 그렇다. 판타지에 가까운 코미디적 장치들, 그리고 상황들은 어쩌면 영화의 메인 캐릭터인 원주민 선수들의 나이를 낮추어 어린이로 설정했다면 어린 관객들에게 더 어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캐리커처에 가까운 배우들의 연기 역시 톤이 과하다.이러한 과한 톤은 류승룡 배우의 초반 시퀀스에서 더욱더 두드러져서 영화의 기대감을 약화시킨다. (적어도 흥행면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수려한 코미디로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재치 있는 상황들과 대사, 그리고 그것을 적당한 톤으로 전달한 배우들, 특히 주연 류승룡 배우의 유연하면서도 과중하지 않은 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영화에서 이러한 과장된 모드가 감독의 의도였다면 그는 배우 류승룡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그럼에도 난 앞서 언급한 <아마존 활명수>의 진정성에 무게를 더 두고 싶다. 수행해야 할 상황극이 과장이든 상투적이든, 배우 류승룡은 시종일관 열정적인 연기와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씬에서는 장장 2시간여 동안 (러닝타임 기준) 그가 보여준 열정과 최선에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또한 감독 김창주의 쉽지 않았을 도전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가 아마존에 만들어 놓은 하나의 길은 누군가에게는 가이드라인으로, 누군가에게는 교본으로 한국 영화에 적지 않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존 활명수>는 실패한 코미디일진 모르겠지만 분명 성공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영화 '아마존 활명수' 메인 예고편]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김효정arte국수호와 김재덕의 따로 그려 함께 올린 '사계', 그 절반의 성공깜깜한 무대 위, 산등성이처럼 굴곡진 형체를 살펴보니 몸을 웅크린 채 한 데 모인 무용수들이었다. 싹을 틔우듯 조심스러운 몸짓을 시작하자 봄이 왔다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경쾌한 여름을 지나, 보름달이 높이 뜨자 무용수들이 원형으로 강강술래를 추었다. 이어 천을 휘두르는 무용수의 몸짓에서 매서운 한파가 느껴졌다.76세 한국 전통춤 대가 국수호와 40살 현대무용가 김재덕. 두 사람은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무용(국수호·김재덕의 사계)으로 풀어냈다. 서울시무용단의 신작이기도 한 이번 공연에서, 봄과 여름은 김재덕이 가을과 겨울은 국수호가 고안했다. '국수호·김재덕의 사계'는 사계절을 탄생과 소멸 등의 묵직한 주제로 치환하지 않았다. 어부사시사의 윤선도처럼 자연에 대한 감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계절마다 몇몇 주요한 장면에서, 생명력과 생동감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기술적으로는 한국무용의 손사위 등 국수호 특유의 움직임과 추상화와 같은 김재덕의 몸짓이 섞이면서 나름대로 신선한 동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연출에 빛나는 국수호의 관록과 김재덕의 에너지를 융합하고자 한 점도 서울시무용단의 새로운 시도여서 기대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면서 각 안무가의 스타일이 너무 진하게 드러나, 공연 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부분이 간혹 눈에 띄었다. 특히 가을. 봄과 여름에서 느꼈던 원초적 생명력은 가을을 지나면서 수확과 공동체를 의식한 춤으로 갑자기 옮겨갔다. 강강술래나 일렬로 늘어서 부채를 들고, 연쇄적인 몸동작으로 춤을 이어가는 동작은 과거 무대의 한 장면처럼 진부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서는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겨울에서는 다시금 추위와 칼바람에 맞서는 무용수들의 신선한 동작에 안도감이 들었다.봄과 여름의 무대와 가을과 겨울의 무대가 더블빌(두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것을 의미)처럼 느껴진 게 안무자들이 의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창작을 보완하고 대본, 연출, 음악의 모든 과정을 함께 구상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맥이 풀리는 지점이 있었다. 무대 장치와 의상의 색을 최소화해 움직임으로만 사계를 표현했다지만, 필자의 입장에서 시간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준 것은 무용이라기보다 음악이었다. 리듬을 강조한 현대 음악에 전통 악기와 소리꾼의 소리가 입혀져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렸다.관객을 한 번 크고 묵직하게 울리는 음악이 큰 힘을 발휘했다.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무대는 후반부 무용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면서 연출에 좀 더 힘을 줬어도 나쁘지 않았을까. 이해원 기자이해원arte미친 사람의 독백 같은 90분… 이자벨 위페르의 강렬한 '메리 스튜어트'흔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왕 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리지만 비슷한 이름의 또 다른 비운의 여왕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 스튜어트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추대됐고, 16살에는 프랑스의 왕세자빈이 됐다. 왕관을 쓰고 태어났지만, 후에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18년간 망명 생활을 한다. 결국 반역을 꾸몄다는 죄를 쓰고 도끼로 참수형 당하는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연극 '메리 스튜어트'는 이 비운의 여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1인극이다. 주연은 '칸의 여왕' 이자벨 위페르. 1971년 데뷔해 40여년간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국민 배우다.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2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까지 받아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전설적인 배우.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클레어의 카메라', '여행자의 필요'로 한국 영화에도 출연했다.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공연은 메리 스튜어트의 횡설수설하는 독백이 90분 내내 이어진다. 수많은 대사를 쏟아내지만, 일관된 이야기가 없다.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하는 것 같다가도,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듯 들린다. 어린 시절 추억, 자신을 따르던 4명의 시녀의 이야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지만, 주제가 쉴 새 없이 방향을 튼다. 누구에게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때로는 같은 말을 빠르게 반복하기도 한다.위페르의 연기도 아무런 예고 없이 이리저리 널뛰기한다. 차분하게 시를 읊듯 말하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혼자 깔깔거리며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한 편의 안무처럼 정처 없이 무대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고 팔을 이리저리 휘젓기도 한다. 여왕의 목소리와 몸짓에 굴곡진 인생에 담긴 사랑, 슬픔, 분노 등 폭발하는 감정이 은유적으로 담겼다.무대도 관객에게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고 절제됐다. 무대를 가득 채운 새하얀 화면이 푸른색, 붉은색으로 빛깔을 바꾸고,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한다. 횡설수설하는 메리 스튜어트를 이해하려는 관객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마치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아 미쳐버린 여왕의 악몽에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다. 추억과 감정이 파도치고 뒤섞여 갈피를 잃은 여왕의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관객은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연극보다는 무대에 올려진 한 편의 행위 예술로 느껴진다. "호불호가 나뉜다"는 평가가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감상이 극단적으로 나뉠 공연이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90분이 될 작품.기술적인 면에서 소소하게 아쉬운 대목도 있다. 프랑스어 대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자막이 나오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장면이 아쉽다. LED 조명이 지나치게 밝아 무대를 보기 힘들 정도로 눈이 부신 순간도 있었다. 서사를 이해하기보다는 이미지를 느껴야 하는 연극이었다.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누명을 쓰고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느낀다면 가슴을 옥죄는 신선한 연극이 될 수 있겠다.구교범 기자구교범arte15년만에 완벽한 合 보여준 박세은-김기민의 '월클' [발레 리뷰]3일 막을 내린 국립발레단 정기공연 <라 바야데르>. 한국 무대에서 박세은(35·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과 김기민(32·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이 남녀 주역 페어로 서는 당일(1일, 3일)까지 예매경쟁이 치열했다. 공연날에 풀리는 '시야제한석'이라도 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창구 부근을 서성댔다. 15년만에 국립발레단에서 다시 합을 맞추게 된 박세은과 김기민을 언제 또 볼 수 있겠느냐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국립발레단은 닷새간 <라 바야데르>를 통해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의도를 훌륭하게 구현했다. 그리가로비치는 주역 무용수들이 무대를 최대한 넓게 쓰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 2000년부터 자신의 레퍼토리를 국립발레단이 공연하도록 지도했다. 국립발레단은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2010년 <라이몬다>를 올려 김지영, 김주원, 김현웅, 이동훈 등 발레스타들이 탄생했었다. 그리가로비치의 무대 특징은 음악이 흐르는 모든 시간이 안무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역시 그냥 흘러가는 장면이 없게끔 안무를 넣었다. 막과 막 사이에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며 지나간다.특히 박세은과 김기민이 남녀 주역으로 선 무대에서는 어떠한 빈틈도 느낄 수 없었다. 주역들의 역량에 따라 무대가 빈약할수도, 반대로 풍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증명해냈다. 박세은은 지난 여름에도 파리오페라발레단 동료들과 내한해 발레단의 레퍼토리 갈라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역시 전막에서 드러났다. 니키아는 수석무용수에 오른다해서 다 주어지는 배역이 아니다. 박세은은 니키아에 대해 "발레라는 기본기 위에 자신만의 연기와 주관, 특성을 자연스럽게 노출해야하는 어려운 캐릭터"라고 언급한 바 있다.박세은은 이번 무대에서 솔로르가 사랑을 배신한 현실과 아직도 그를 사랑하며 함께하고픈 이상 사이의 괴리감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점프나 고난도의 기술도 뛰어났지만, 자신을 배신한 솔로르를 보고 일그러지는 표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씬에서 복잡한 니키아의 심경이 느껴졌다. 느린 음악에도 자연스럽고 기품있게 춤을 추는 프랑스 발레가 묻어났다. 그랑쥬떼로 등장한 김기민은 솔로르 그 자체였다. 세계 무대에서 수십번 솔로르가 됐었던 내공을 살려 엄청난 에너지로 무대를 휘어 잡았다. 점프 체공, 턴의 속도, 흐트러짐 없는 균형 감각을 지키면서 훌륭한 연기력까지 보여줬다. 자신감 있고 위풍당당한 1막의 솔로르에서 전사의 위용이 느껴졌고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2막과 3막의 솔로르에서는 우매함이 전해졌다. 야망을 위해 공주를 선택하는 고전 발레 속 평면적인 남자 주역을 이처럼 설득력 있게 밀어붙인 무용수도 이번 공연 중 김기민이 유일했다. 피겨스케이팅으로 치자면 예술성과 기술점에서 가산점을 골고루 받아 금메달을 목에 걸지 않았을까.1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다소 아쉬웠다. 음량이 작을 때에는 희미한 나머지 무용수들의 토슈즈가 바닥에 달라붙는 듯한 쩍쩍 소리가 들려왔다. 2막의 감자티와 솔로르의 약혼식에서는 두 사람이 무용을 마쳤는데 음악이 약간 늦게 끝나기도 했다. 꽃바구니를 든 니키아가 춤을 출 때는 연주가 명랑하게 울려퍼졌는데 비참함 속에서 춤을 추는 니키아가 아니라 마치 <돈키호테>의 키트리가 탬버린을 들고 등장하는 느낌이었다(라 바야데르와 돈키호테의 작곡가는 루트비히 밍쿠스로 같기는 하다).이해원 기자이해원arte뮤지컬광화문 연가 '주크박스 뮤지컬'이라지만 너무 음악만 돋보여…'광화문연가'‘붉은 노을'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80~90년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이문세의 대표곡들이다. 세월이 지나도 제목만 들으면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절로 떠오르는 이 곡들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이영훈 작곡가. '광화문연가'는 그가 생전 남긴 명곡을 엮어 이야기로 풀어낸 '주크박스' 스타일 뮤지컬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에 어울리게 이야기 역시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식 방식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은 죽음을 단 1분 앞둔 명우. 응급실에 누워있던 그는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다. 이곳은 사람의 인연을 관장하는 월화가 사람이 죽기 전 추억을 되감아 주는 장소다. 명우는 첫사랑 수아와의 꼬여버린 사랑을 풀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향수가 진하게 느껴지는 음악이 강점이다. '소녀', '붉은 노을', '그녀의 웃음소리뿐',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등 이문세와 이영훈의 대표곡들이 아낌없이 담겼다. 주인공 명우를 분한 윤도현의 담백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옛날 발라드와 어우러져 관객 각자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월하 역을 맡은 차지연은 파워풀한 목소리뿐 아니라 발랄한 코미디 연기로 장면마다 시선을 사로잡는다.음악과 출연진이 지닌 힘에 비해 작품 자체의 매력은 부족하다. 죽기 직전에 꼬인 인연을 풀어준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하지만 두 연인이 극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는 이야기가 다소 신파적으로 흘러간다. 대사도 어색하고 딱딱하게 느껴져 몰입을 방해한다. 대사에서 음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때로 부드럽지 않고 뜬금없다. 전반적으로 음악을 이야기에 녹여내기보다는 이야기가 음악을 담기 위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든다.무대 연출 방식도 심심하다. 80~90년대의 막걸릿집, 나이트클럽, 광화문 광장 등 배경을 하얗게 칠한 무대 위에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이 없다. 단출한 무대를 앙상블과 춤, 시위 장면의 액션으로 채우지만, 오히려 산만하게 표현된다.가을이 깊어지는 계절에 향수를 일으키는 발라드 음악을 진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 명곡들이 지닌 매력에 비해 이야기와 무대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 80~90년대를 추억하는 관객이라면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이 더욱 진하게 와닿을 수 있겠다. 공연은 2025년 1월 5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린다.구교범 기자구교범arte니키아 내팽개친 솔로르…국립발레단의 파격적 '라 바야데르' [리뷰]단도(短刀)를 든 니키아에 겁먹고 도망치는 공주 감자티의 발걸음은 높은 '점프'로 표현됐고(1막), 니키아가 독사에 물려 죽자 연인 솔로르는 공주를 따라 무대 뒷편으로 달아나버렸다(2막). 대단원의 막. 죽은 연인(니키아)의 환영을 본 솔로르가 멍하니 홀로 선 채 공연이 끝난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와 줄거리는 같지만 연출 차이가 또렷했다. 국립발레단은 정기공연 <라 바야데르>를 개막 전날인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개막 공연의 캐스팅대로 무대와 의상이 완벽히 갖춰진 상태에서 진행됐다.<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라는 뜻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공주 감자티의 삼각 관계가 줄거리를 이룬다. 솔로르가 권력 욕심에 국왕의 제안으로 공주와 약혼하던 날, 계략에 빠진 니키아는 꽃바구니 속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러시아 황실에서 탄생한 고전 발레지만 인도의 힌두사원이 배경인지라 무대와 의상, 상체 동작이 기존 발레와는 달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발레단은 예술감독으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33년 이끌었던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97)의 <라 바야데르>를 채택했다. 이는 그가 2013년 창작한 새로운 버전의 안무로, 국립발레단이 그 해 이 버전을 초연한 바 있다.지난달 유니버설발레단이 상대적으로 화려한 안무 및 더 많은 무용수의 투입으로 볼거리를 더했다면 국립발레단은 마임에 춤의 요소를 삽입해 작중 인물들의 성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연출한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막과 막 사이, 음악만 흐르던 장면에 주요 인물들이 등장해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암시하기도 했다. 죽음에 이른 니키아를 버려두고 줄행랑 치는 솔로르는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사실적으로 느껴졌다.특히 국립발레단의 결말은, 유니버설발레단의 결말과 확연히 달랐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서는 니키아와 솔로르가 망령의 세계에서나마 이어지지만 국립발레단 무대에서는 이들의 사랑에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잠시 꿈 속에서 니키아를 만났던 솔로르는, 다시는 니키아를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며 무대가 마무리된다. 안무자가 상투적인 결말(영혼의 재회)을 거부하고, 솔로르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 결과다.<라 바야데르>의 백미는 역시나 3막 '망령들의 군무'였다. 32명의 발레리나가 한명씩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장면. 새하얀 옷, 머리와 팔로 이어지는 얇은 베일은 그들이 이승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장치다. 절제된 아라베스크, 각도기로 잰 듯 그 누구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다리. 균형 감각과 탄탄한 기본기, 예술성을 고려해야하는 무용수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 군무는 '발레 블랑(Ballet Blanc·백색 발레)'으로 손꼽힌다.<라 바야데르>에서도 국립발레단은 수석무용수가 아닌 여러 등급의 무용수들을 주역으로 골고루 기용했다. 솔로르를 연기한 허서명을 제외하고 주역으로 나선 수석무용수는 없었다. 하지만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닷새간 공연 중 조연재(솔리스트)와 안수연(코르 드 발레·군무단원)은 니키아와 감자티를 모두 연기한다. 이들은 앞선 정기 공연에서도 주역으로 서며 간판스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특히 안수연은 올해 초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뜨/오딜로 깜짝 데뷔한 이래 주역의 길만 걷고 있는 신예다. 이번 무대에는 유럽에서 최정상 무용수로 활약 중인 발레리나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이 김기민(마린스키발레단)도 참여해 니키아와 솔로르를 연기할 예정이다. 다음달 1,3일로 예정된 김기민과 박세은의 무대는 예매 창구가 열린지 3분만에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진다.이해원 기자이해원arte절제를 통한 벨칸토의 진정한 아름다움, 도쿄 신국립극장 '몽유병의 여인'지금까지 도쿄 신국립극장에 소개된 이탈리아 오페라들은 전통의 관점에서 제작돼 작품의 근원에 보다 잘 접근하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일본 청중에 대한 배려이자 취향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아무래도 일본 관객보다는 유럽 관객이 다양하고 현대적인 오페라 연출에 익숙하기 때문.필자가 경험한 <아이다>와 <라 보엠>, <돈 파스콸레>, <팔스타프>를 생각해보면 모두 전통적인 연출을 기반으로 한 프로덕션이었다. 그만큼 신국립극장의 예술적인 비전은 오페라 하우스 고유의 질적향상과 전통의 축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껴진다.리체우 극장과 마시모 극장 등이 공동제작한 <몽유병의 여인>의 도쿄 신국립극장 초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벨리니의 오페라의 아름다움은 절제에서 온다는 걸 느꼈던 공연이었다. 신국립극장 측의 훌륭한 주연 및 지휘자 캐스팅으로, 일본에서 오히려 이탈리아보다 더 이탈리아적인 오페라가 탄생했다.선율의 승부사, 벨리니몽유병 환자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쓴 건 벨리니가 유일하다. <몽유병의 여인>은 몽유병이라는 소재도 특이하지만, 벨리니의 강점인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작품 전반에 녹아있어 벨칸토(음색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이탈리아의 가창 기법) 오페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벨리니는 이 작품에 이어 <노르마>와 <청교도>와 같은 이탈리아 벨칸도 오페라의 최고작을 계속 썼는데, 몽유병의 여인과 이 두 작품은 벨리니 3부작으로 불린다. 스위스 시골 마을에 사는 젊고 아름다운 방앗간집 양녀 아미나는 부유한 지주 청년 엘비노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엘비노는 아미나와 만나기 전, 동네 여관 주인 리사와 사귀다 헤어졌다. 리사는 엘비노를 잊지못해 아미나에게서 그를 빼앗을 궁리를 한다. 어느날 영주의 외아들 로돌포 백작이 마을에 방문해 신분을 속이고 리사의 여관에 묵는데, 몽유병을 앓던 아미나가 잠옷바람으로 백작이 묵던 방으로 들이닥친다. 백작은 아미나가 정상이 아니란 생각에 얌전히 잠을 재우고 자신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하지만 리사는 엘비노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들여 다음날 백작의 방에서 참들어 있는 아미나를 보게 만들면서 엘비노는 약혼 반지를 집어던진다. 그후로 백작과 엘비노, 아미나와 리사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환되는데 종래에는 백작의 증언으로 아미나의 결백함을 알게 된 엘비노는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며 이야기가 끝난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벨리니의 오페라는 연극적 요소보다는 음악에 집중한 작품이다. 여타 오페라에서는 속사포 같은 대사와 웅장한 앙상블, 크레센도를 활용해 감정을 분출하는 음악이 주를 이루지만 벨리니는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없을 정도로 음악 그 자체가 빛나는 작품들을 썼다. 대본보다는 선율로 승부하는 작곡가였던 셈.도쿄 무대서 빛난 벨리니의 절제미도쿄 신국립극장의 <몽유병의 여인>에서는, 마에스트로 베니니의 활약이 극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7년 한국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막베트>에서 호연한 바 있는 만큼 그의 음악은 거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오케스트라는 낭창한 선율과 충분한 소스테누토, 효과적인 레가토를 바탕으로 과하지 않은 리듬감을 표현했다. 또 악보 위 음표 이상의 뉘앙스를 자아내는 쉼표가 여백의 미를 주는 등 간결한 벨칸토 스타일 오페라를 충실히 구현해냈다.음악이 진행될수록 과하지 않은 에너지의 발산과 수렴, 넘실거리는 멜로디와 정교한 대조를 이루는 강약의 앙상블이 두드러졌다. 특히 성악과 함께 하는 유니즌에서 유장한 템포에서 기인하는 편안함과 반짝이는 목관의 음색을 바탕으로, 가수에게 안정적이면서도 충분한 호흡과 표현을 유도했다. 마치 잔잔한 파도 위에 비친 빛나는 태양빛의 반짝임처럼 목소리가 빛났다.반주를 맡은 도쿄 필하모닉이 마치 이탈리아 중형급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로 변신한 듯했는데, 뮌헨이나 비엔나 소재의 큰 극장들의 스펙타클하고 강력한 벨리니와는 전혀 달랐다. 벨리니가 의도한 전원적인 판타지가 이어졌기에 디테일과 극의 흐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지닌 극장을 고려하면, 여느 이탈리아 극장의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이탈리아보다 더 이탈리아적인 무대 소프라노 클라우디아 무스키노는 감동적인 가창과 연기력을 보여줬다. 1막 첫 등장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Come per me sereno” / “Solra il sen la man mi posa”)부터 안정적인 톤과 남다른 테크닉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바로 이전의 현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이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보다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했는데, 과시적인 표현력이나 찌르는 듯한 강렬함 없이 자연스러운 연결과 아름다운 발성을 들려줬다. 화려한 고음보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감정의 표현에 관객들이 온전히 녹아들었다.특히 진득하면서도 깊은 호소력을 자아낸 2막 마지막 아미나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Ah! non credea mirarti” / “Sì presto estinto, o fiore”)로 새로운 소프라노 스포가토(Soprano sfogato)가 탄생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목관 악기와 함께 호흡하고 바이올린의 선율과 노래하는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궤적을 이뤄갈지 기대됐다.1964년생의 정통 이탈리아 벨칸토 테너인 안토티노 시라구사의 엘비노 또한 가벼운 비성, 투명한 고음을 견지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 속에서 적절한 강조를 주어 엣 시대 벨칸토 테너를 연상케했다. 그의 가창은 1막 2중창 “반지를 그대에게 드리오”(Prendi l’anel ti dono)부터 소프라노와 절묘한 앙상블을 이뤘다. 극중 인물의 반대되는 감정이 교차하는 1막 마지막 2중창까지 환상적이었다.고난이도로 악명 높은 2막 첫 아리아 같은 경우 대부분 성공적인 높은 음들을 성공시켰는데, 간혹 높은 음표를 같은 스케일 안에서 낮게 처리하여 음악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처리한 솜씨도 훌륭했다. 바리톤 히데카츠 츠마야의 로돌포 백작 또한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창으로 극에 탄력을 가미하며 기대 이상이었다. 신국립극장은 탁월한 앙상블과 통일된 음색, 템포와 비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발력으로 단조로울 수 있는 작품 속 합창의 역할을 극적으로 소화했다.연출가 바바라 류크는 스위스 시골의 분위기에 약간의 현대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스토리에 충실한 안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이탈리아 연출가들 특유의 무용수 사용으로 막이 시작하기 전 소프라노와 함께 음악 없는 상징적 무용을 보여줬다. 다만 무용이 군더더기처럼 보여 아쉽기도 했다. 빠른 무대전환과 마지막 아미나의 옥상 베란다 씬의 시각적 효과에는 갈채를 보낼 만했다. 이번 <몽유병여인은 >음악과 무대, 성악가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모두 '절제의 미덕'으로 벨리니의 충만한 아름다움을 수행한 역작이었다.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박제성arte연극햄릿 넘실넘실 파도치는 조승우의 '햄릿'…독보적이라 아쉽다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전회차 매진을 기록한 예술의전당의 '햄릿'.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지난여름 신시컴퍼니와 국립극단의 무대로 이미 관객을 만난 작품이다. 올해에만 두 번이나 무대에 오른 400년 전 고전에 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은 유별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조승우 효과'다. 데뷔 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 한국 공연계 최고 스타 조승우를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로비는 관객으로 가득했다.조승우가 맡은 역할은 덴마크 왕자 햄릿. 햄릿의 어머니인 여왕 거트루드는 선왕이 죽자마자 그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삼촌이자 새아버지, 그리고 새로운 왕이 된다. 햄릿이 클로디어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가족사에 햄릿은 어머니를 향한 배신감, 그리고 삼촌을 향한 복수심에 휩싸인다.조승우는 기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실성한 미치광이부터 고뇌하는 철학자, 복수심에 불타는 아들까지 폭넓은 캐릭터가 응축된 햄릿이 살아숨쉰다. 조용히 속삭이듯 한숨처럼 내뱉는 독백부터 분노에 치밀어 지르는 괴성까지 대사가 넘실넘실 파도치지만 과하지 않은 완급조절이 돋보인다. 섬세한 감정연기에도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들리는 조승우 특유의 발성과 발음도 빛난다.그에 비해 주변 인물들은 밋밋하다.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거트루드의 고민이 잘 느껴지지 않고 갑자기 애틋한 어머니의 옷을 입는다.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도 햄릿의 광기에 상처받는 모습에 머물러 비극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햄릿을 향한 증오심에 불타던 레어티즈도 너무 쉽고 다정다감하게 햄릿을 용서한다.공연은 원작 희곡에 충실하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에 셰익스피어 특유의 운율이 살아있는 대사의 맛도 살아있다. 햄릿의 어린 시절 친구 길덴스턴과 로렌크란츠가 실성한 척하는 햄릿 사이에 오가는 도발적인 유머도 간결하고 재치 있다.다만 이 '햄릿'만의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평면적인 주변 인물이 이 문제를 더욱 부각한다. 햄릿 혼자 뜨겁고 나머지 인물들이 역동성이 없어 햄릿의 이야기를 받쳐주는 역할에 그친다. 주인공이 삶과 죽음, 영혼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이르는 깊은 고민을 쏟아내지만 이에 대응할 캐릭터가 부족해 일방통행으로 흘러간다.진득하게 가슴 옥죄는 인간적인 고뇌와 딜레마가 깊게 담긴 예술의전당의 '햄릿'. 그 자체로도 '햄릿'의 힘은 느껴지지만, 이 작품만의 색깔을 찾는 관객에게는 고전을 '재연'하는 무대로 느껴질 수 있다. 공연은 11월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구교범 기자구교범arte한국영화 흥행 부진속 '작은 신화' 쓰고 있는 독립영화 '장손'한국영화가 연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설날 연휴, 크리스마스와 함께 한국영화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꼽히는 올해 추석에도 <베테랑 2>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을 뿐이었다. <베테랑 2>는 다행히 750만에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작으로 남게 되었지만 이후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다.지난 10월 16일에 개봉한 <보통의 가족>(허진호) 은 손익분기점이 150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31만을 기록했으며 이어 17일에 개봉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김민수) 는 손익분기점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개봉 10일 차 누적 관객 수 8만명을 약간 웃도는 스코어를 보여줌으로써 역시 손익분기를 달성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영화의 적신호는 다만 제작 편수나 극장 스코어로만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기생충>의 전 세계적 열풍의 시작점이었던 칸 영화제에서도 한국영화는 최근 들어 경쟁 섹션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그 외의 비경쟁 섹션에서 역시 편수가 줄고 있다. 현재로서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생각하면 더더욱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럼에도, 이 난국에 희소식이 있었다면 재기발랄하고 수려한 독립영화들이 이 곳 저곳에서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9월 11일에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 중인 <장손>이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장손>은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미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3관왕을 차지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한 달을 넘긴 상영 기간 동안 <장손>은 (현재 기준) 관객 수 2만 9천명을 기록했고, 여전히 (소소하지만) 그 만의 작은 신화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장손>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특히 가부장을 목숨처럼 여기는 가문에서 장손으로 겪어야 하는 번뇌와 시름을 코믹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가업으로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3대의 대가족은 조상의 제삿날에 모이게 되고,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가족들은 공장의 운영과 상속을 둘러싸고 ‘박 터지게’ 싸우기 시작한다.이 전투의 키를 쥐고 있는 장손이자 영화감독을 꿈꾸는 ‘성진’(강승호) 은 두부 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할아버지는 분노한다. 가족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헤어진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손숙)가 돌아가시고 ‘병사’들은 다시금 모인다.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어느 집이나 그렇듯) 이들은 또 다른 전투를 벌인다.<장손>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가정의 99%에서 일어날 법한, 혹은 이미 일어났을 일을 그리는 현실 코미디 영화다. 굳이 ‘코미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영화의 장르가 그래서가 아닌, 이 영화가 삶을 그리는 방법이 마치 1920년대 무성 코미디가 일상과 사람을 그리는 상황극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끊임없이 계속되는 웃픈 ‘상황극’들은 그럼에도 불구하 순간적인 코미디적 설정으로 증발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진행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배경과 서사는 상황극, 혹은 소동극의 (의도된) 경박함과 유쾌함을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비극이자, 가족 전체의 역사다.따라서 <장손>은 복합적인 영화다. 가족 시트콤의 외피 안에 들어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가족의 집합체이면서도 한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이 작은 패키지 안에 가부장제에 대한 풍자와 군부 독재 시대의 상흔이, 그리고 세대교체의 아이러니와 가족 로맨스가 조화롭게 혼재다면, 이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아닌가.다시 산업의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독립영화의 기준에서도 촬영이나 미술에 있어서 꽤 풍부한 모양새를 보여주는 <장손>은 (총제작비 6억) 손익분기점 5만을 돌파해야 하는 영화다. 상업적인 승패에 있어 아직 2만의 관객을 더 만나야 하지만 그 길이 험난해 보이지 않은 것은 두 달여 간의 긴 상영 기간 동안, 이 작은 영화가 보여준 저력과 꿋꿋함 때문이다. 최근 한국영화의 하락에 있어 우리에게 초심이 필요한 단계라면, <장손>은 그 답 중 하나다.[영화 '장손' 메인 예고편]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김효정arte숙성된 와인 같던 90분...드쿠플레의 마법에 취하다26년전 영상 속 젊은 무용수 모습과 함께 무대 위에서 나이든 현재의 무용수가 춤을 춘다. 무용이 '찰나의 예술', '젊음의 예술'이라는 편견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프랑스 공연예술 거장 필립 드쿠플레의 <샤잠!>은 무용에 대한 여러가지 고정관념을 부수는 수작이었다. 지난 25일 개막 공연 전, 드쿠플레는 무대위에 등장해 자신의 공연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1998년 초연 후 26년이나 지났지만 "기술적인 이유, 예술적인 이유, 그리고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완성"이라는 고백이었다. <샤잠!>이 새로운 시대의 기술과 예술을 포용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공연이라는 점을 은유한 것이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압도하는 현재, 드쿠플레의 공연에 쓰인 기술이 최첨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존 기술을 천재적으로 활용하는 독창성과 상상력이 돋보였다.<샤잠!>은 초연에서도 스크린 영상이나 거울, 액자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그런데 2024년의 <샤잠!>은 기술의 적용을 바탕으로 '시간의 축'을 새롭게 세워 과거의 무용수와 현재 무용수의 모습을 무대에 대비시켰다. 관객들은 과거와 현재의 무용수가 같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분명 같은 동작을 하지만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든 무용수의 모습에서 기품이 더욱 두드러졌다.영화 연출가이기도 한 드쿠플레는 액자 프레임을 활용한 무대 연출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액자 프레임의 배치에 따라 무대 위 무용수들은 스크린 속의 가상 인물과 실재 인물을 넘나들었다. 반투명 거울을 이용한 무대가 등장하면서 실체와 허구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졌다. 거울 반쪽에서만 신체를 드러내보이면서 움직이자 거울에 반사된 면이 늘거나 줄면서 신체가 괴이하게 보이는 게 현대미술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이날 무대에 오른 11명의 무용수 가운데 6명이 초연 멤버들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인이 된 몸, 거구가 된 몸 등 관객은 무대 위 제각각의 신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상적인 신체 조건부터 따지는 무용계에 드쿠플레가 따가운 일침을 던진 것 같았다.이들은 과거처럼 완벽한 각도의 아라베스크나 점프, 착지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무대를 노련하게 채웠다. 숙성된 와인처럼 이들의 노화는 아름다웠다. 나이들어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버린게 아닌, 여전한 미완성의 공연에서 시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드쿠플레의 무용을 빛내준 공신이었다. 프랑스의 캬바레, 서커스, 재즈를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음악이 세련된 인상을 남겼다. 초연 무용수들은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무대 위에 올라 어눌한 한국어로 이어질 무대의 실험적 요소에 대해 소개했다. 위트있는 대사와 몸짓 덕분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위트란 최고 수준의 지성을 의미한다는데, 드쿠플레의 무대에선 그것이 끊이지 않았다.이해원 기자이해원arte뒷돈 챙겨 '완전범죄' 꿈꾼 형사들, 사이렌이 꺼진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다소 직관적인 제목의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왠지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가 연상되는….)는 말 그대로 ‘더러운 돈’에 손댔다가 패가망신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루되어 있던 (거의) 모든 인물이 참담한 결말에 이른다는 점에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수라>가 권력의 덫에 갇힌 인간들의 최후를 보여준다면 이번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제목이 명시하듯, 오로지 돈에 사활을 건 인물들이 맞는 비극을 그린다.영화는 인천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두 경찰 파트너, ‘명득’(정우)과 ‘동혁’(김대명)은 서 내에서 지극히 선량한 동료들이지만 동시에 부패할대로 부패한 인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부패’에는 각자의 사연과 명분이 있다. 명득은 아픈 딸의 수술비를 위해, 동혁은 곧 결혼할 여자친구와의 새 출발을 위해 부지런히 뒷돈을 뜯고 다닌다.어느 날 이들은 차이나타운에서 대형 범죄조직을 운영하는 ‘주기룡’ (백수창)이 주기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중국으로 빼돌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신고도, 추적도 불가능한 범죄 자금이라는 점을 이용해 이들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로 한다. 잠입에 성공하여 돈을 실어 나르던 중, 이들은 범죄 현장에 잠입수사 중이던 광수대 형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 행보를 결정하지도 못한 채 예기치 못한 총격전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광수대 형사가 사망한다. 곧 경찰들이 들이닥칠 것을 감지한 명득과 동혁은 돈을 들고 은신처로 도피한다.영화를 연출한 김민수 감독은 <불한당>과 <킹메이커> (두 작품 모두 변성현 연출)의 각본을 쓴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작가라는 그의 출신만큼,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이하 ‘더러운 돈’)는 이야기의 동력이 압도적인 작품이다. 평범한 오락영화로 이 영화를 마주한다면 영화의 속도와 질감에 꽤 당황할 것이다.어두운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의 전경, 그리고 도시 곳곳을 메우는 환락의 공간을 배회하는 두 형사로 시작되는 <더러운 돈>은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만큼이나 어둡고 누아르적인 공기를 뿜어낸다. 이러한 영화의 강렬한 프롤로그는 얼마지 않아 두 형사 캐릭터의 ‘따뜻한’ 서사로 승화된다.아픈 딸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명득은 투철한 부성을 가진 아버지로, 그러한 명득을 친형처럼 따르는 동혁은 의리 있는 동생으로, 이들은 비리 경찰이라는 외피보다는 선의를 가진 형제로 비친다. 이들은 끝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함께 돈을 은신처에 묻어두는 것까지 가까스로 성공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들을 지켜보던 내부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영화는 명득과 동혁을 의심하고, 증거를 파헤치는 눈, 광수대 팀장 ‘승찬’(박병은)이 수사 책임자로 파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승찬은 침착하고 냉철한 성정을 가진 상관으로 보이지만 그런데도 늘 뭔가 명쾌하지 않은 그림자를 거닐고 다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궁극적으로 승찬은 이들이 저지른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게 되고, 명득과 동혁은 사선에 서게 된다.앞서 언급했듯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의 가장 큰 미덕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다.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캐릭터가 마주하는 의외의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서스펜스가 이 영화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영화의 스토리, 혹은 이야기의 구성에 있어 허점이 없지 않다. 가령 잠복 중에 사망한 광수대 형사를 명득이 발견하지 않고 현장을 떠나버린 이유나 후반에서 명득과 동혁은 어떻게 승찬의 선택을 예측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 등의 부재가 아쉽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강점이 약점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마치 명득과 동혁이 비리 경찰이지만 이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지옥도’로 그려낸 것 역시 이 영화의 놓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BIFF2024 Trailer l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DIRTY MONEY l 한국영화의 오늘]▶▶▶[관련 인터뷰] "제가 정우를 쪼는 장면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참 좋았어요"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김효정arte12345678910111213141516171819/ 19다음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