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건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단 희망을 줍니다."
한강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기고문을 내고 입장을 밝혔다. 스미스는 12일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노벨문학상이 주로 백인 남성에게 수여됐단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럽 중심주의와 성차별이 만연했는지 보여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스미스는 한강이 세계 문학 시장에 알려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본 기획부터 홍보까지 앞장 선 그는 앞서 2016년 한강과 공동으로 영국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을 사랑하는 세계의 무수히 많은 독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강의 뛰어난 작품이 인정받는 것을 지켜보는 건 기쁜 일"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강은 종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 비평가는 최근 '한강의 문학적인 공헌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울려 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며 "많은 사람이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한강 작품 번역가는 전세계적으로 50명이 넘는다며 본인의 공이 과장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영어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며 "많은 번역이 한국어에서 직접 해당 언어로 이뤄졌고, 영어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미 스웨덴어, 프랑스어,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로 번역됐고, 이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번역가의 노고와 실력 덕분에 한강의 문학 작품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강 작품 중 <소년이 온다>도 별도로 언급했다. 스미스는 "영어권에선 <채식주의자>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만, 한국 독자들 사이에선 <소년이 온다>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 현재적 영향에 대한 국가적 담론을 불러일으켰다"고 평했다. 노벨상 발표 당시 BTS 멤버가 이 책을 읽었다고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사실도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