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의무는 목소리가 없거나 너무 작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써 왔습니다."
5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린 제32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소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희선 소설가(52)는 이같이 말했다. 김 소설가는 "이 상이 제가 지금껏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걸 확인해줬다"며 "큰 용기를 얻고 앞으로도 그들의 목소리를 왜곡되지 않게 옮겨쓸 수 있는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약사이기도 한 김 소설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소설 <247의 모든 것>으로 상을 받았다. 그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병동 복도를 지나가다 시간이 멈춘 듯 적막한 병실에서 누워 있는 환자들과 눈이 마주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시작됐을 때 격리돼 있는 그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그의 소설엔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단 핑계로 폭력과 야만을 정당화한 우리의 흔적이 기록돼 있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 선정 이유를 "바이러스의 상상력을 역동적으로 펼친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시 부문 수상자는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를 쓴 강은교 시인(79)이다. 수많은 여성의 고달프고 쓸쓸한 현실을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는 기법으로 형상화한 시집이다. 강 시인은 수상소감으로 "이번 시집을 내고 더 이상 시집을 내지 못할 것 같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는데, 문학적 에너지를 다시 불어넣어줘 감사하다"면서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은, 공감과 따뜻함을 주는 문학을 하겠다"고 말했다.
평론은 비평집 <우정의 정원>을 낸 서영채 서울대 교수(63)가, 번역은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알바로 트리고 말도나도(36)가 선정됐다. 말도나도는 <남한산성>과 채만식의 소설 등 국내 문학 12권을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서 교수는 "앞으로 친구들을 비롯해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산문학상은 총상금 2억원의 국내 최대 규모 종합문학상이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7월(평론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된 모든 문학작품이다. 국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2년 전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 상을 받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