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소품부터 장인의 숨결이 깃든 전통 공예까지. 인테리어에 관심을 둔 소비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연례행사가 있다.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의 공예품 박람회 '2024 공예트렌드페어'다. 지난해 7만8900여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아시아 공예문화의 최신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행사다.
그중에서도 매년 백미로 꼽히는 건 '케이 크래프트(K-CRAFT) 전시관이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의 공예품을 모아놓은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상옥 옥장(玉匠)의 반지, 이재만 화각장(華刻匠)의 함 등 준비된 물량이 줄줄이 완판됐을 정도다.
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유산청의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협업) 지원 사업'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란 것. 장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현대적 전승 공예품을 개발하고, 후속 전시와 판매를 돕는 사업이다. 올해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11명을 대상으로 29종 78점의 개발을 지원했다.
전통과 현대미의 만남
공예트렌드페어 준비가 한창인 부스에서 김범용 유기장(鍮器匠)과 김주일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함께 제작한 놋그릇 '아름드리. 합'의 배치를 두고 세심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김범용 작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들게 돼 벅차다"며 작품을 들어 보였다.
김범용 작가는 한국 전통 놋그릇인 '유기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다. 조부인 고(故) 김근수 유기장, 부친 김수영 선생을 이어 3대째 경기도 안성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는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 등으로 나뉘는데, 김 작가는 그중에서 이수자다.
이번에 선보이는 '아름드리. 합' 연작은 작가가 지난해 디자인 개발 사업에 참여해 제작한 식기다. 고향 안성의 아름드리나무를 본뜬 형상을 3단 놋그릇에 걸쳐 쌓아 올렸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붓고, 손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 만드는 '주물 유기'의 전통 공법을 따랐다. 장인의 기술이 집약됐다는 점에서 국가 공인 전승공예품인증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아름드리. 합' 제작의 숨은 공신으로 김주일 예술감독을 꼽았다. 그는 "우리처럼 '만드는 사람'은 정해진 틀에 갇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3단으로 쌓아 올리는 등 조형적인 시도는 감독님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올해로 11년째 전승 공예품 디자인 조언을 이어오고 있는 김 감독은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몇 주간 함께 생활하며 제작 과정을 실견했다"며 "장인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공예시장의 트렌드를 접목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데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공예트랜드페어에는 이처럼 장인과 디자이너가 협업한 작품 90여점이 전시된다. 이삼웅 디렉터를 비롯해 권중모·김현지·방윤정·서현진 등 컨설턴트들이 디자인에 참여했다. 전통공예의 멋과 실용성을 두루 겸비한 작품들이 태어난 배경이다. 박수영 금박장 이수자의 '가죽 금박 두루주머니', 하은정 누비장 이수자의 '시간-흔적 누비 가방'이 단적인 예다.
옛 소재에 담긴 의미도 놓치지 않았다. 김주영 궁중채화 이수자의 '어사화 모빌 시리즈'는 조선시대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신하한테 내린 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탁상용 모빌로 구현된 꽃의 움직임에서 봄의 생동감과 입신양명의 상징적 의미를 구현했다.
한국 너머 파리·런던까지 진출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의 배경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세련된 감각이 더해진 전통 공예품을 개발하는 것이 하나, 고령화로 인한 국가무형유산 전승 단절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이유가 나머지다. 전통공예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전승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국가무형유산 전승자의 평균 연령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보유자 평균 연령은 75.2세, 전승교육사는 64.4세에 이른다. 김범용 작가는 "고된 제작 과정에 비해 수익이 적으니 젊은 층이 이탈하는 추세"라며 "지금 우리 공방에 5명이 남았지만, 10년 뒤면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이 판로 확보까지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에 출품된 디자인 협업 작품 43종 등은 총 640여점이 판매됐다. 김범용 작가의 놋그릇은 파크하얏트 파리-방돔 측에서 따로 견본을 요청해 받아 가기도 했다.
김 작가는 "프랑스의 디저트 업체 알랑듀카스에서도 구매 가능 수량과 시기를 확인하는 문의가 빗발쳤다"며 "전화를 받는 순간 꿈인가 싶어서 전율이 일었다"고 소회했다.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에 참가하며 생각의 폭이 한층 트인 것 같아요. 전통공예가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고, 앞으로 글로벌 눈높이에 맞춰서 작업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케이 크래프트 전시관은 이번 달 공예트렌드페어에 이어 내년 영국 런던 '크래프트 위크' 진출을 앞두고 있다.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으로 제작된 전승 공예품은 국가유산진흥원의 온라인 쇼핑몰 '케이헤리티지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안시욱 기자
그중에서도 매년 백미로 꼽히는 건 '케이 크래프트(K-CRAFT) 전시관이다. '인간문화재'급 장인들의 공예품을 모아놓은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상옥 옥장(玉匠)의 반지, 이재만 화각장(華刻匠)의 함 등 준비된 물량이 줄줄이 완판됐을 정도다.
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유산청의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협업) 지원 사업'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란 것. 장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현대적 전승 공예품을 개발하고, 후속 전시와 판매를 돕는 사업이다. 올해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11명을 대상으로 29종 78점의 개발을 지원했다.
전통과 현대미의 만남
공예트렌드페어 준비가 한창인 부스에서 김범용 유기장(鍮器匠)과 김주일 예술감독을 만났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함께 제작한 놋그릇 '아름드리. 합'의 배치를 두고 세심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김범용 작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작품을 실제로 만들게 돼 벅차다"며 작품을 들어 보였다.
김범용 작가는 한국 전통 놋그릇인 '유기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다. 조부인 고(故) 김근수 유기장, 부친 김수영 선생을 이어 3대째 경기도 안성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는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 등으로 나뉘는데, 김 작가는 그중에서 이수자다.
이번에 선보이는 '아름드리. 합' 연작은 작가가 지난해 디자인 개발 사업에 참여해 제작한 식기다. 고향 안성의 아름드리나무를 본뜬 형상을 3단 놋그릇에 걸쳐 쌓아 올렸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붓고, 손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 만드는 '주물 유기'의 전통 공법을 따랐다. 장인의 기술이 집약됐다는 점에서 국가 공인 전승공예품인증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아름드리. 합' 제작의 숨은 공신으로 김주일 예술감독을 꼽았다. 그는 "우리처럼 '만드는 사람'은 정해진 틀에 갇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3단으로 쌓아 올리는 등 조형적인 시도는 감독님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올해로 11년째 전승 공예품 디자인 조언을 이어오고 있는 김 감독은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몇 주간 함께 생활하며 제작 과정을 실견했다"며 "장인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공예시장의 트렌드를 접목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데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공예트랜드페어에는 이처럼 장인과 디자이너가 협업한 작품 90여점이 전시된다. 이삼웅 디렉터를 비롯해 권중모·김현지·방윤정·서현진 등 컨설턴트들이 디자인에 참여했다. 전통공예의 멋과 실용성을 두루 겸비한 작품들이 태어난 배경이다. 박수영 금박장 이수자의 '가죽 금박 두루주머니', 하은정 누비장 이수자의 '시간-흔적 누비 가방'이 단적인 예다.
옛 소재에 담긴 의미도 놓치지 않았다. 김주영 궁중채화 이수자의 '어사화 모빌 시리즈'는 조선시대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신하한테 내린 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탁상용 모빌로 구현된 꽃의 움직임에서 봄의 생동감과 입신양명의 상징적 의미를 구현했다.
한국 너머 파리·런던까지 진출
전승 공예품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의 배경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세련된 감각이 더해진 전통 공예품을 개발하는 것이 하나, 고령화로 인한 국가무형유산 전승 단절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이유가 나머지다. 전통공예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전승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국가무형유산 전승자의 평균 연령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보유자 평균 연령은 75.2세, 전승교육사는 64.4세에 이른다. 김범용 작가는 "고된 제작 과정에 비해 수익이 적으니 젊은 층이 이탈하는 추세"라며 "지금 우리 공방에 5명이 남았지만, 10년 뒤면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이 판로 확보까지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에 출품된 디자인 협업 작품 43종 등은 총 640여점이 판매됐다. 김범용 작가의 놋그릇은 파크하얏트 파리-방돔 측에서 따로 견본을 요청해 받아 가기도 했다.
김 작가는 "프랑스의 디저트 업체 알랑듀카스에서도 구매 가능 수량과 시기를 확인하는 문의가 빗발쳤다"며 "전화를 받는 순간 꿈인가 싶어서 전율이 일었다"고 소회했다.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에 참가하며 생각의 폭이 한층 트인 것 같아요. 전통공예가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고, 앞으로 글로벌 눈높이에 맞춰서 작업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케이 크래프트 전시관은 이번 달 공예트렌드페어에 이어 내년 영국 런던 '크래프트 위크' 진출을 앞두고 있다. 디자인 개발 지원 사업으로 제작된 전승 공예품은 국가유산진흥원의 온라인 쇼핑몰 '케이헤리티지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