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빈에서 에곤 실레가 그린 그림에 2024년을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이 깊게 몰입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 특별 강연에서 한 청중이 묻자 한스 페터 비플링어 레오폴트 미술관장은 이렇게 답했다. “무엇이 우리 감정을 휘젓는지 같이 생각해 봅시다. 실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파고들었어요.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0여 점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동시대 거장의 작품도 걸려 있다. 내년 3월 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비엔나 1900’전에서는 레오폴트 미술관이 소장한 실레의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 191점을 볼 수 있다.
실레는 1918년 스물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기 전 “전쟁은 끝났고, 나는 이제 가야 해. 내 그림들은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릴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비플링어 관장은 이 유언을 소개하며 “그의 말이 서울에서 실현됐다”며 “한국에서 이렇게나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그는 미술관 창립자 루돌프 레오폴트가 어떻게 실레와 클림트 작품을 수집하게 됐는지, 1900년대 빈이 미술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설명했다. 비플링어 관장은 “1950년대 젊은 의대생이던 루돌프가 작품을 수집하기 전까지 실레는 당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아니었다”며 “실레를 알리겠다는 각오로 뉴욕, 런던, 파리 등에 전시를 열면서 빈 표현주의가 명성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또 실레의 ‘꽈리열매를 한 자화상’을 화면에 띄운 비플링어 관장은 “에곤 실레는 그 어떤 작가보다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며 “수직선, 수평선, 사선 등 그림에 나오는 선들이 균형감 있고 색깔도 조화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비플링어 관장은 “연간 50만 명에 달하는 레오폴트 미술관 전체 관람객의 4%가 한국인이고, 에곤 실레 작품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면서 “특별전을 공동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경제신문사, 그리고 전시를 찾은 한국 관람객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