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무려 24년이 흘러 그 전설이 귀환했다 (속편은 사실 2001년부터 기획이 되어왔지만,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에 저작권을 팔게 되면서 제작이 지연된 바 있다). 이번 속편은 아버지 막시무스의 운명을 따르게 되는 아들, ‘루시우스 (폴 메스칼)’가 중심이 된다.
이야기의 배경은 막시무스의 죽음으로부터 20년이 흐른 시점. 로마는 현재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의 폭압 아래 식민지를 늘려 배를 불리려는 탐욕만 남은 지옥이다. 그들은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 장군을 앞세워 누미디아를 점령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어린 시절에 왕위 다툼의 희생을 피하기 위해 위배 당한 막시무스의 아들, ‘루시우스’는 아내 아리샷과 함께 누미디아의 병사로 살아가고 있었고, 이들은 로마의 침략에 맞서 싸우게 된다. 루시우스는 전쟁 중 아내를 잃고 누미디아는 패전하여 그 결과로,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는 아버지 막시무스가 그랬듯, ‘글래디에이터’가 되어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귀환하게 된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글래디에이터 2>는 많은 변화와 (기술적) 진보를 보여준다. 일단 영화는 시간 대비를 감안하더라도 전편보다 훨씬 더 커진 스케일을 자랑한다. 전편의 3배인 무려 3억1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번 속편에서는 글래디에이터 시리즈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이 대폭 증가했다. 전투 시퀀스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글래디에이터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 역시 코뿔소부터 CGI로 만들어진 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이번 속편 제작의 상당한 노력이 이 전투 장면들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고 배를 띄워 치르는 해상전은 단연코 영화의 메이저 스펙터클 중 하나다.
다만 이렇게 (스케일면에서 그리고 연출적인 집중도면에서) 공을 들인 전투씬들이 최종적으로 이번 작품의 완성도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가령 CGI로 탄생한 ‘살인 원숭이’ 같은 경우 지극히 판타지적인 창조물로 <글래디에이터>의 장르적(비판타지, 시대극)인 전제와는 맞지 않는 존재다.
<글래디에이터>의 중심인물들, 즉 막시무스와 루시우스는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임에도 이 외의 인물들과 사건은 철저히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에 기대고 있는 시대극에서 기술적으로 탄생한 괴수는 이질적이다.
이렇게 증가한 전투 장면들, 그리고 스펙터클의 요소는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부실함을 초래했거나 혹은 부실한 이야기의 대안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가령, 영화는 루시우스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왕위를 계승 받을 루시우스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될 것이 두려운 어머니가 어린 그를 어딘가로 보내 버리는 짧은 시퀀스 이외에 그가 어떻게 누미디아에 정착했으며 그곳의 병사가 되었는지는 과감히 생략된다.
또한 이후 그가 노예로 팔려 가고 나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같은 과정을 겪은 전편의 막시무스 서사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속편은 주인공만 바뀐 전편의 이야기, 그리고 전편과 비슷하지만, 스케일과 기술적인 진보로 더 비대해진 전투 장면들만 반복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전편보다 속편에 더 큰 기대를 하는 것은 감독의 잘못이라기보다 관객의 잘못이다. 그리하여 전설이 된 <대부 2> 정도를 제외하면 속편이 전편을 이길 수 없다는 속설은 사실상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래디에이터>는 이러한 속편의 딜레마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글래디에이터> 시리즈 (3편 제작이 결정되었다) 의 위엄을 상기시키는 초반 전쟁 장면, 그리고 오프닝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마지막 전쟁 장면 등은 필히 스크린으로 봐야 할 광경으로 언급하고 싶은 요소다.
스콧의 다음 작품은 팬더믹 기간에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캐릭터 스터디로 전해진다. <글라디에이터> 와 같은 스케일 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지만 막시무스, 리플리, 델마/루이스 같은 위대한 캐릭터를 만들었던 그가 분명 빛을 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86세를 맞은 감독 리들리 스캇의 행보는 그렇기에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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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