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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천장화에 담긴 동경과 공포와 위압을 읽다 [서평]

안시욱arte
2025.01.09
1940
세계 정상들의 머리 위엔 ‘35t 페인트 동굴’이 있다

<천장화의 비밀>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아르카디아
256쪽|3만8000원
세계 정상들의 머리 위엔 무엇이 있을까.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의 대회의실 '인권과 문명 연합의 방' 천장은 종유석으로 빼곡하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광물질로 가득한 동굴처럼 조성됐다. 스페인 예술가 미구엘 바르셀로가 페인트 35만t을 들여 1200㎡ 규모로 그린 거대한 천장화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 '인권과 문명 연합의 방'에 걸린 바르셀로의 천장화. 지구의 지형을 표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채취한 흙과 암석으로 만든 페인트 35t이 사용됐다. ©imageBROKER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작품은 지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재료로 사용한 페인트는 세계 각지에서 채취한 흙과 암석으로 제작됐다. 조화로운 국제 관계를 추구한다는 유엔의 이상이 반영된 것이다. 제작비로 2300만유로(약 347억원)가 들며 논란도 일었다. "국제 원조와 백신에 사용돼야 할 기금이 빨려 나갔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천장화의 비밀>은 전 세계 명소들의 천장에 얽힌 사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등 종교적인 공간부터 궁궐과 저택, 스톡홀름의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까지 주요 천장화 40점을 다룬다. 영국의 독립 큐레이터 캐서린 맥코맥이 썼다. 현재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교편을 잡을 정도로 이 분야 전문가다.

<천장화의 비밀>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 아르카디아, 256쪽, 3만8000원)



천장화는 벽화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욕망은 줄곧 높은 곳을 향해왔다. 손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동경심이 맞물린 결과다. 신석기의 천신 숭배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산, 깎아지른 듯 가파른 중세 고딕 양식의 첨탑 등이 단적인 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장화는 당대 미술계 정점에 오른 화가들의 몫이었다. '아담의 창조'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동시대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았던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1509년 글에서 "지옥에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며 당시 작업 과정을 회상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부르크 극장에 걸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천장화. ©Azoor Photo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천장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구스타프 클림트다. '황금의 화가'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고혹적인 화풍 배경엔 천장화 화가로서의 경력이 큰 몫을 했다. 부르크 극장 계단 위를 뒤덮은 '디오니소스의 제단'은 사치스러운 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에서 벽화와 동일한 구도의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

주로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했던 천장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주제로 확장했다. 스페인의 달리 극장-박물관 천장엔 두 개의 거대한 발바닥이 그려졌다.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과 그의 뮤즈 갈라를 그린 '바람의 궁전'이다. 성적 욕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유의 초현실주의 화풍이 부각된다.

스페인 카탈루냐에 있는 달리 극장-박물관에 걸린 살바도르 달리의 '바람의 궁전'(1972). ©Howard Sayer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쿠바의 옛 대통령궁 천장은 '공화국의 승리'가 장식한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 1902년 완전한 독립을 이룬 쿠바의 해방을 그린다. 그런데 작품은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여신 이미지와 상반되는 운명을 맞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티스타의 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쿠바 혁명으로 바티스타를 쫓아낸 반군은 건물의 이름을 '혁명 박물관'으로 바꿨다.

책에는 도판 200여점이 함께 수록됐다. 천장화는 건물과 일체라는 특성 탓에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관람이 어렵다. 여러 각도로 촬영한 도판들이 현장의 모습을 비교적 실감 나게 옮긴다. 미국과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에티오피아, 쿠바 등지에 분량을 할애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천장을 올려다 본 모습. 나선형의 뒤틀린 기둥 등 가우디의 건축철학이 엿보인다. ©Rom Whitworth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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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정상들의 머리 위엔 ‘35t 페인트 동굴’이 있다

                                <천장화의 비밀>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아르카디아
                                256쪽|3만8000원
                                세계 정상들의 머리 위엔 무엇이 있을까.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의 대회의실 '인권과 문명 연합의 방' 천장은 종유석으로 빼곡하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광물질로 가득한 동굴처럼 조성됐다. 스페인 예술가 미구엘 바르셀로가 페인트 35만t을 들여 1200㎡ 규모로 그린 거대한 천장화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 '인권과 문명 연합의 방'에 걸린 바르셀로의 천장화. 지구의 지형을 표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채취한 흙과 암석으로 만든 페인트 35t이 사용됐다. ©imageBROKER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작품은 지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재료로 사용한 페인트는 세계 각지에서 채취한 흙과 암석으로 제작됐다. 조화로운 국제 관계를 추구한다는 유엔의 이상이 반영된 것이다. 제작비로 2300만유로(약 347억원)가 들며 논란도 일었다. "국제 원조와 백신에 사용돼야 할 기금이 빨려 나갔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천장화의 비밀>은 전 세계 명소들의 천장에 얽힌 사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등 종교적인 공간부터 궁궐과 저택, 스톡홀름의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까지 주요 천장화 40점을 다룬다. 영국의 독립 큐레이터 캐서린 맥코맥이 썼다. 현재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교편을 잡을 정도로 이 분야 전문가다.

                                <천장화의 비밀>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 아르카디아, 256쪽, 3만8000원)



                                천장화는 벽화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욕망은 줄곧 높은 곳을 향해왔다. 손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동경심이 맞물린 결과다. 신석기의 천신 숭배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산, 깎아지른 듯 가파른 중세 고딕 양식의 첨탑 등이 단적인 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장화는 당대 미술계 정점에 오른 화가들의 몫이었다. '아담의 창조'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동시대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았던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1509년 글에서 "지옥에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며 당시 작업 과정을 회상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부르크 극장에 걸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천장화. ©Azoor Photo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천장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구스타프 클림트다. '황금의 화가'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고혹적인 화풍 배경엔 천장화 화가로서의 경력이 큰 몫을 했다. 부르크 극장 계단 위를 뒤덮은 '디오니소스의 제단'은 사치스러운 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에서 벽화와 동일한 구도의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

                                주로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했던 천장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주제로 확장했다. 스페인의 달리 극장-박물관 천장엔 두 개의 거대한 발바닥이 그려졌다.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과 그의 뮤즈 갈라를 그린 '바람의 궁전'이다. 성적 욕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유의 초현실주의 화풍이 부각된다.

                                스페인 카탈루냐에 있는 달리 극장-박물관에 걸린 살바도르 달리의 '바람의 궁전'(1972). ©Howard Sayer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쿠바의 옛 대통령궁 천장은 '공화국의 승리'가 장식한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 1902년 완전한 독립을 이룬 쿠바의 해방을 그린다. 그런데 작품은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여신 이미지와 상반되는 운명을 맞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티스타의 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쿠바 혁명으로 바티스타를 쫓아낸 반군은 건물의 이름을 '혁명 박물관'으로 바꿨다.

                                책에는 도판 200여점이 함께 수록됐다. 천장화는 건물과 일체라는 특성 탓에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관람이 어렵다. 여러 각도로 촬영한 도판들이 현장의 모습을 비교적 실감 나게 옮긴다. 미국과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에티오피아, 쿠바 등지에 분량을 할애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천장을 올려다 본 모습. 나선형의 뒤틀린 기둥 등 가우디의 건축철학이 엿보인다. ©Rom Whitworth_Alamy /아르카디아 제공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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