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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과 빅뱅 이론을 함께 연구한 제자의 우주 [책마을]

안시욱arte
2023.12.22
1.1k0
시간의 기원

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박병철 옮김
RHK
496쪽│3만2000원
"완벽한 이론을 찾는다면 … 신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1942~2018)은 그의 역작 <시간의 역사>(1988)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의 본질에 관한 예리한 통찰서였다. 수학적 계산과 물리 법칙만으로 '신의 의도'에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블랙홀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 질문을 던지며 전 세계적으로 2500만부 넘게 팔렸다.

이내 호킹은 한계에 부딪혔다. 우주는 '지나치게' 생명에 우호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 우주를 정교하게 설계한 것처럼 보였다. 알맞게 계량한 듯한 암흑 에너지와 우주배경복사, 중력과 공간의 작용 등이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인간이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을 복잡한 함수로 풀어낸 그의 이론은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시간의 역사>는 잘못된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신과 같은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볼 것을 권했지만, 우리는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죠. 이제 신 놀음을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수리과학과 캠퍼스 연구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스티븐 호킹(오른쪽)과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 벽장에는 호킹의 제자들이 집필한 박사학위 논문이 빼곡히 꽂혀 있다. /RHK 제공



최근 출간된 <시간의 기원>은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이란 부제를 달고 나왔다.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으니 호킹이 직접 쓴 책은 아니다. 그의 제자이자 공동 연구자로 20여년을 함께한 토마스 헤르토흐가 호킹의 마지막 연구를 정리했다.

호킹은 마지막 연구에서 빅뱅 이론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형이상학적 물리 법칙 대신 인간 관찰자의 시선에 주목했다. 만물을 굽어보는 '신'이 아닌, 땅을 살아가는 '벌레'의 시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자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던 물리 법칙도 우주의 탄생과 함께 진화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 제목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연상케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책은 호킹의 이론을 집대성한 과학 교양서이자 호킹과의 일화를 나열한 에세이다. 이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과학 이론에 관한 설명 사이사이 호킹과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삽입하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과학 개념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불쑥 튀어나오는 과거 회상에 흐름을 놓치기 쉽다. 천체물리학에 관한 배경 설명을 담은 2장과 3장의 내용을 꼼꼼히 챙겨갈 것을 권한다.

2001년 벨기에 브뤼셀의 선술집 '라 모르트 수비테'에서 담소를 나누는 호킹(가운데)과 저자(오른쪽 끝) /RHK 제공



저자와 호킹은 199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학생과 교수로 만났다. 호킹은 시간의 종착점인 블랙홀과 시작점인 빅뱅을 음과 양의 관계로 여겼다. 그래서 매 학기 두 분야 박사과정생을 번갈아 가며 받았다. 호킹이 기계장치로 건넨 첫 마디부터 알쏭달쏭했다. "나와 함께 빅뱅 이론을 연구해줬으면 합니다. 다중우주에서 파생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든요."

당시 과학계는 다중우주론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 우주 외에도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다중우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무한대의 우주 중 우리 우주처럼 생명체에 우호적인 공간이 생성될 경우의 수도 충분히 많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지금 같은 우주에 살게 된 것은 우연히 희박한 확률을 뚫은 결과라는 뜻이다.

호킹은 다중우주론에 회의적이었다. 전혀 다른 차원과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다른 우주를 인간이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미래에 어디로 나아갈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빅뱅의 미시 세계에 작용하는 양자역학의 문법으로 광대한 우주를 관장하는 상대성이론을 설명한 결과다. 아주 작은 세계와 아주 거대한 세계의 관계를 다룬 이 방정식에 인간이 설 자리는 없었다.

2006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를 방문해 ATLAS 입자 탐지기를 견학중인 스티븐 호킹과 저자(호킹 뒤). 당시 ATLAS 대변인이었던 피터 제니와 부대변인 파비올라 자노티가 실험실 내부를 안내하고 있다. /RHK 제공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호킹은 인간을 중심에 세웠다. 빅뱅 직후 짧은 시간 동안 우주가 빠르게 냉각하며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 자체가 변했다고 봤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이러한 진화는 현재 인간 관찰자의 관측에 따라 결정된다. 쉽게 와닿는 가설은 아니지만, 책은 "우주의 역사는 우리가 하는 질문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호킹은 2018년 세상을 떠난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아이작 뉴턴과 다윈의 무덤 사이에 안치됐다. 지병이 악화한 마지막 10년 동안은 기계장치를 통한 소통도 어려웠다. 자신의 이론을 가장 활발히 설명해야 할 시기, 그의 시간은 육신에 갇힌 채 끝난 것이다. 저자의 입을 통해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시간의 기원>(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RHK)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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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철 옮김
                                RHK
                                496쪽│3만2000원
                                "완벽한 이론을 찾는다면 … 신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1942~2018)은 그의 역작 <시간의 역사>(1988)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의 본질에 관한 예리한 통찰서였다. 수학적 계산과 물리 법칙만으로 '신의 의도'에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블랙홀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 질문을 던지며 전 세계적으로 2500만부 넘게 팔렸다.

                                이내 호킹은 한계에 부딪혔다. 우주는 '지나치게' 생명에 우호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 우주를 정교하게 설계한 것처럼 보였다. 알맞게 계량한 듯한 암흑 에너지와 우주배경복사, 중력과 공간의 작용 등이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인간이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을 복잡한 함수로 풀어낸 그의 이론은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시간의 역사>는 잘못된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신과 같은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볼 것을 권했지만, 우리는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죠. 이제 신 놀음을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수리과학과 캠퍼스 연구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스티븐 호킹(오른쪽)과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 벽장에는 호킹의 제자들이 집필한 박사학위 논문이 빼곡히 꽂혀 있다. /RHK 제공



                                최근 출간된 <시간의 기원>은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이란 부제를 달고 나왔다.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으니 호킹이 직접 쓴 책은 아니다. 그의 제자이자 공동 연구자로 20여년을 함께한 토마스 헤르토흐가 호킹의 마지막 연구를 정리했다.

                                호킹은 마지막 연구에서 빅뱅 이론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형이상학적 물리 법칙 대신 인간 관찰자의 시선에 주목했다. 만물을 굽어보는 '신'이 아닌, 땅을 살아가는 '벌레'의 시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자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던 물리 법칙도 우주의 탄생과 함께 진화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 제목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연상케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책은 호킹의 이론을 집대성한 과학 교양서이자 호킹과의 일화를 나열한 에세이다. 이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과학 이론에 관한 설명 사이사이 호킹과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삽입하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과학 개념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불쑥 튀어나오는 과거 회상에 흐름을 놓치기 쉽다. 천체물리학에 관한 배경 설명을 담은 2장과 3장의 내용을 꼼꼼히 챙겨갈 것을 권한다.

                                2001년 벨기에 브뤼셀의 선술집 '라 모르트 수비테'에서 담소를 나누는 호킹(가운데)과 저자(오른쪽 끝) /RHK 제공



                                저자와 호킹은 199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학생과 교수로 만났다. 호킹은 시간의 종착점인 블랙홀과 시작점인 빅뱅을 음과 양의 관계로 여겼다. 그래서 매 학기 두 분야 박사과정생을 번갈아 가며 받았다. 호킹이 기계장치로 건넨 첫 마디부터 알쏭달쏭했다. "나와 함께 빅뱅 이론을 연구해줬으면 합니다. 다중우주에서 파생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든요."

                                당시 과학계는 다중우주론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 우주 외에도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다중우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무한대의 우주 중 우리 우주처럼 생명체에 우호적인 공간이 생성될 경우의 수도 충분히 많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지금 같은 우주에 살게 된 것은 우연히 희박한 확률을 뚫은 결과라는 뜻이다.

                                호킹은 다중우주론에 회의적이었다. 전혀 다른 차원과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다른 우주를 인간이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미래에 어디로 나아갈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빅뱅의 미시 세계에 작용하는 양자역학의 문법으로 광대한 우주를 관장하는 상대성이론을 설명한 결과다. 아주 작은 세계와 아주 거대한 세계의 관계를 다룬 이 방정식에 인간이 설 자리는 없었다.

                                2006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를 방문해 ATLAS 입자 탐지기를 견학중인 스티븐 호킹과 저자(호킹 뒤). 당시 ATLAS 대변인이었던 피터 제니와 부대변인 파비올라 자노티가 실험실 내부를 안내하고 있다. /RHK 제공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호킹은 인간을 중심에 세웠다. 빅뱅 직후 짧은 시간 동안 우주가 빠르게 냉각하며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 자체가 변했다고 봤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이러한 진화는 현재 인간 관찰자의 관측에 따라 결정된다. 쉽게 와닿는 가설은 아니지만, 책은 "우주의 역사는 우리가 하는 질문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호킹은 2018년 세상을 떠난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아이작 뉴턴과 다윈의 무덤 사이에 안치됐다. 지병이 악화한 마지막 10년 동안은 기계장치를 통한 소통도 어려웠다. 자신의 이론을 가장 활발히 설명해야 할 시기, 그의 시간은 육신에 갇힌 채 끝난 것이다. 저자의 입을 통해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시간의 기원>(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RHK)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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