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환상적인 클래식 감동 여정을 아르떼에서 시작하세요.
환상적인 클래식 감동 여정을 아르떼에서 시작하세요.

'미국 현대 소설 아이콘'의 질문…왜 쓰는가? [책마을]

임근호arte
2023.05.21
2460
왜 쓰는가

필립 로스 지음
정역목 옮김
문학동네
684쪽│2만8000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곤 한다. 투수와 타자를 다 잘하는 야구 선수가 등장한다든가, TV에 나오는 예능인 정도로 생각했던 인물이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혹은 현직 국회의원이 암호화폐(코인)에 투자해 떼돈을 벌기도 한다.

당혹스러운 건 소설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한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필립 로스(1933~2018)도 그런 문제의식에 사로잡혔다. 1959년 데뷔작 <안녕, 콜럼버스>로 미국도서상을 거머쥔 이 겁 없는 신인은 스물여덟 살인 1961년 한 잡지에 ‘미국에서 소설 쓰기’라는 에세이를 발표해 문학계를 뒤흔들었다.

타계 5주기를 맞아 최근 국내 출간된 <왜 쓰는가>는 이 에세이를 비롯해 그가 1960년부터 2014년까지 쓴 글과 인터뷰 등을 한데 모은 책이다. 부커상, 퓰리처상 등 노벨문학상 빼고 거의 모든 문학상을 받은 로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지만 그의 팬이 아니라도 읽어볼 만하다. 다채로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은 결국 로스가 평생 몰두해온 주제, 도대체 ‘왜 쓰는가’에 대한 집요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소설 쓰기’는 수록된 글 중 단연 독보적이다. 여기서 그는 “현실은 계속 우리의 재능을 능가하며, 문화는 어느 소설가나 부러워할 만한 인물을 거의 매일 던져준다”고 20세기 중반 미국 작가들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환경 탓만 하지 않는다. 동료 작가들을 질책한다. “베스트셀러의 나라에서는 주인공이 타협에 이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세 번째 막에서 누군가가 ‘이봐, 왜 그냥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현실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너무 쉽게 풀어나가는 안이함을 지적한 표현이다.

실명도 등장한다. 당대 유명작가였던 노먼 메일러가 시위만 하러 다니면서 <나 자신에 대한 광고> 같은 책을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 D 샐린저에 대해선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는 결코 답을 주지 않는다”며 “유일한 조언은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에 매력적이 되라는 것”이라고 냉소했다.



그가 말하는 바는, 작가들이 현실의 어렵고 논란 많은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흥미롭고 생각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의 한국 소설가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문학이 외국에서 상도 받고 잘나가는 듯 보이지만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감할 수 없는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 상상력의 빈곤 등 로스가 지적한 문제가 원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과 같이 최근 출간된 그의 2004년 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를 읽어보면 좋다. 이 장편소설은 대체역사물이다. 1940년대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선에 실패하고, 나치를 옹호했던 대서양 횡단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국은 고립주의, 친파시즘, 반유대주의에 빠져든다. 당시 작가의 부인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던 이 소설은 후일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래를 예견했다며 다시 화제가 됐다.

<왜 쓰는가>는 로스의 진중함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대문호지만 으스대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권력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사회에서 소설이 다른 누구에게 심각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지 않습니다.” 인터뷰어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소설은 뭘 하나요?” 로스의 답은 이랬다.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줍니다. 가장 좋은 경우 작가들은 독자가 읽는 방식을 바꿉니다. 그게 내가 보기에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기대입니다. 또 내게는 그것으로 아주 충분해 보이고요.”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작성
    jypk@v-w.co.kr

    신고하기

    신고사유 선택 [필수]

                  허위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 주세요.

                  댓글 운영 정책

                  아르떼에서는 다음과 같이 댓글 서비스를 관리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댓글 서비스 이용 중에 이용약관 및 운영정책을 위반할 경우, 사전통지 없이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댓글 운영정책은 이용약관에 기반하고 있으며 기타 사항은 고객센터 문의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1. 서비스 이용 제한 사유
                  - 회사 또는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 회사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 외설 또는 폭력적인 메시지, 기타 관계법령 및 공서양속에 반하는 경우
                  - 제3자에게 피해가 발생하였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 댓글 도배 등 부정한 용도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 기타 관계 법령을 위배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2. 회원 댓글 기능
                  가. 댓글 신고
                  - 회원은 다른 회원의 댓글을 신고할 수 있습니다. 신고된 댓글은 신고한 회원에 한해서 숨김 처리되며 이는 복구할 수 없습니다.
                  - 신고된 댓글은 이용약관 및 운영정책에 따라 처리됩니다.

                  나. 댓글 삭제
                  - 회원은 본인이 작성한 댓글을 삭제할 수 있습니다.
                  - 삭제된 댓글의 답글은 작성자 또는 회사가 별도로 삭제하기 전까지 삭제되지 않습니다.
                  다. 회원 차단
                  - 회원은 다른 회원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차단한 회원의 댓글및 답글은 숨김처리되며 차단해제도 가능합니다.

                  3. 서비스 이용 제한
                  - 회사는 비방 및 욕설, 광고 등 댓글에 부적합한 단어의 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서비스 이용 제한은 누적 위반 횟수를 우선하여 처리하나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처리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회사는 회원의 IP 및 ID를 일시 또는 영구적으로 차단하여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 회사는 회원의 댓글을 삭제하여 게재된 댓글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 회원은 ‘나의 댓글 관리’에서 누적 위반 횟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관 리뷰

                  공유하기

                  신고하기

                  신고사유 선택 [필수]

                                허위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 주세요.

                                메달 및 별점 운영 정책

                                아르떼는 공연, 전시, 책 등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해 평가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해당 문화 콘텐츠를 직접 체험한 평론가와 담당 기자가 수여하는‘아르떼 메달’과 일반 회원들이 직접 평가하는 ‘아르떼 별점’ 두 가지입니다.

                                아르떼 메달 - 평론가와 기자들이 수여하는 ‘품질 보증서’

                                아르떼 메달은 미슐랭가이드처럼 좋은 공연·전시·책에 대해서만 1~3개씩 부여합니다.
                                한 개건, 두 개건 메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콘텐츠였다고 인정하는 시스템입니다. ‘메달 셋’은 말할 것도 없겠죠. 해당 콘텐츠를 직접 체험한 평론가와 기자들이 콘텐츠의 품질·가격·현장 분위기 등을 감안해 매깁니다.

                                메달 1~3개는 각각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콘텐츠

                                • 먼 걸음을 감수할 만한
                                  콘텐츠

                                • 훌륭한 콘텐츠

                                아르떼 별점 - 회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생생한 평가

                                ‘다른 회원들은 이 전시·공연·도서를 어떻게 봤을까?’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생생한 후기가 궁금하다면 ‘아르떼 별점’을 확인하세요.
                                회원 누구나 간단한 후기와 함께 1~5개의 별을 달 수 있습니다.
                                ‘아르떼 별점’은 자신의 감상평을 다른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남들은 어떻게 느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창구입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신 평가가 다른 애호가들에게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별 1~5개는 각각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콘텐츠

                                •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콘텐츠

                                • 호불호가 갈리는 콘텐츠

                                • 약간 아쉬운 콘텐츠

                                • 많이 아쉬운 콘텐츠

                                arte

                                '미국 현대 소설 아이콘'의 질문…왜 쓰는가? [책마을]

                                임근호 2023-05-21

                                왜 쓰는가

                                필립 로스 지음
                                정역목 옮김
                                문학동네
                                684쪽│2만8000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곤 한다. 투수와 타자를 다 잘하는 야구 선수가 등장한다든가, TV에 나오는 예능인 정도로 생각했던 인물이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혹은 현직 국회의원이 암호화폐(코인)에 투자해 떼돈을 벌기도 한다.

                                당혹스러운 건 소설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한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필립 로스(1933~2018)도 그런 문제의식에 사로잡혔다. 1959년 데뷔작 <안녕, 콜럼버스>로 미국도서상을 거머쥔 이 겁 없는 신인은 스물여덟 살인 1961년 한 잡지에 ‘미국에서 소설 쓰기’라는 에세이를 발표해 문학계를 뒤흔들었다.

                                타계 5주기를 맞아 최근 국내 출간된 <왜 쓰는가>는 이 에세이를 비롯해 그가 1960년부터 2014년까지 쓴 글과 인터뷰 등을 한데 모은 책이다. 부커상, 퓰리처상 등 노벨문학상 빼고 거의 모든 문학상을 받은 로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지만 그의 팬이 아니라도 읽어볼 만하다. 다채로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은 결국 로스가 평생 몰두해온 주제, 도대체 ‘왜 쓰는가’에 대한 집요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소설 쓰기’는 수록된 글 중 단연 독보적이다. 여기서 그는 “현실은 계속 우리의 재능을 능가하며, 문화는 어느 소설가나 부러워할 만한 인물을 거의 매일 던져준다”고 20세기 중반 미국 작가들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환경 탓만 하지 않는다. 동료 작가들을 질책한다. “베스트셀러의 나라에서는 주인공이 타협에 이르고”, “브로드웨이에서는 세 번째 막에서 누군가가 ‘이봐, 왜 그냥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현실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너무 쉽게 풀어나가는 안이함을 지적한 표현이다.

                                실명도 등장한다. 당대 유명작가였던 노먼 메일러가 시위만 하러 다니면서 <나 자신에 대한 광고> 같은 책을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 D 샐린저에 대해선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에는 결코 답을 주지 않는다”며 “유일한 조언은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에 매력적이 되라는 것”이라고 냉소했다.



                                그가 말하는 바는, 작가들이 현실의 어렵고 논란 많은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흥미롭고 생각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의 한국 소설가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문학이 외국에서 상도 받고 잘나가는 듯 보이지만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감할 수 없는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 상상력의 빈곤 등 로스가 지적한 문제가 원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과 같이 최근 출간된 그의 2004년 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를 읽어보면 좋다. 이 장편소설은 대체역사물이다. 1940년대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선에 실패하고, 나치를 옹호했던 대서양 횡단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국은 고립주의, 친파시즘, 반유대주의에 빠져든다. 당시 작가의 부인에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던 이 소설은 후일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래를 예견했다며 다시 화제가 됐다.

                                <왜 쓰는가>는 로스의 진중함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대문호지만 으스대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권력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사회에서 소설이 다른 누구에게 심각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지 않습니다.” 인터뷰어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소설은 뭘 하나요?” 로스의 답은 이랬다.
                                “일반 독자에게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줍니다. 가장 좋은 경우 작가들은 독자가 읽는 방식을 바꿉니다. 그게 내가 보기에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기대입니다. 또 내게는 그것으로 아주 충분해 보이고요.”


                                부적절한 표현이 감지됩니다.

                                반복 등록 시 본 사이트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