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청년 시절의 다산 정약용은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돌격대장에 다혈질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일기 4권을 최초로 완역해 <다산의 일기장>을 출간한 정민 한양대 교수(사진)는 3일 서울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산' 전문가다. 2006년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다산 연구에 천착해 왔다.
이 책에 실린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 등은 다산이 서른세 살을 맞은 1795년 천주교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충청도로 좌천된 후 상경과 낙향을 반복한 2년 동안 쓴 일기다. 모두 다산의 문집엔 빠져 있다.
이 일기는 1974년 처음 세상에 공개됐으나 5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산은 물론 조선 후기 사회와 천주교 전파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해석이 쉽지 않아서다. 정 교수는 "일기 내용은 표면적으로 보면 어디를 갔다거나 누구와 만났다는 등 무미건조한 사실이 나열됐을 뿐"이라며 "대부분 '자기 검열'을 거친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행간을 파악하기 위해 다산이 주고받은 편지와 시문, 왕실 기록과 각종 상소문, 족보 등을 샅샅이 뒤져 퍼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조선 후기 유학과 서학 사이에서 흔들린 젊은 다산의 솔직한 모습이 담겨 있다. 다산은 초기 천주교회 신부였으나 천주교 문제로 좌천당한 이후 자신의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정 교수는 "다산의 모순적인 면모는 당시 시대가 품었던 모순과 다르지 않다"며 "서학이란 거대한 체계와 처음 대면한 18세기 조선과 지식인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다산은 완전무결한 위인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에 다소 뾰족하고 거침없으며 모순적인, 상대적으로 날 것의 모습에 가깝다. 정 교수는 "젊은 날을 치열하게 살았던 다산처럼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다산의 고민과 좌절, 그 속에서 피어난 통찰을 통해 독자들이 자기만의 의미를 발견해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