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미술의 달'이다. 월 초엔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개최된다. 각종 미술관과 갤러리들도 이에 맞춰 대형 전시들을 준비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전국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막을 올린다. 부산, 광주, 그리고 제주비엔날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에 몸을 싣고 2~3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이면 서울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예술 세계가 펼쳐진다.
부스에서 갤러리들이 작품을 거래하는 미술장터와 달리, 비엔날레는 전시 감독이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골라 선보이는 행사다. 작품의 가격이 아닌 예술성만을 느끼고 싶다면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하반기 대한민국을 수놓는 국내 대표 비엔날레들을 모아봤다.
부산비엔날레
8월 15일 개막하는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제목 그대로 '어둠'에 주목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먼저 '어둠 속의 잡담'를 주제로 한 토크, 국내외 사운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을 모아놓은 '어둠 속의 연주' 등의 프로그램을 내놨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감독을 맡은 건 뉴질랜드 출신 베라 메이, 벨기에에서 온 필리프 피로트. 두 사람은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비가 쓴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18세기 해적 공동체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천한 집단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바다 위에서 돌풍과 태풍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리더가 됐다는 해적 사회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전시 구성도 '해적'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정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마치 해적처럼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작가가 된 사람들을 모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을 누비며 현지에서 구한 소재로 작업을 펼치는 이두원, 가정주부로만 살아가다 마흔에 미술가가 된 윤석남 등이 모두 해적과 삶의 궤적을 같이 한다고 여겼다.
팬스타크루즈와 함께 바다 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부산과 오사카 사이를 오가는 크루즈 위에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관객들은 기존 전시장소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전시공간인 크루즈 선박 내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마치 해적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끝없이 이동하며, 관객들에게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30돌' 광주비엔날레
9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만난다. 비평서 <관계의 미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감독을 맡았다.
부리오는 이번 전시의 주제로 '판소리'를 택했지만, 한국 전통극인 '판소리'가 아니라 공간을 뜻하는 '판'과 '소리'라는 단어의 조합에 주목했다. 그간 미술 비엔날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감각, 소리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부리오는 특히 관객 참여형 전시를 구상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전시장 안에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설명하는 글을 적게 만들거나, 난로를 가져다 두고 불 앞에 몸을 녹일 수 있게 하는 등의 시도를 해 왔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도 그가 현장을 찾은 관객들의 개입을 얼마나, 또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비엔날레
오는 11월, '환상의 섬' 제주에도 비엔날레가 찾아온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주최로 내년 2월 16일까지 83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14개국에서 39팀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국내 작가 17명과 해외 작가 22명으로 구성됐다. 4회째를 맞이하는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표류'다. 문명의 여정 속에서 인간이 표류하며 만남과 충돌, 융합을 반복했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나라 교역 중에 표류해 탐라국에 도착한 왜국 사신과 조우한 탐라국 왕자 아파기(阿波伎)의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가상의 표류기를 꾸몄다. 이상향을 찾아가는 인간의 삶을 마치 하나의 표류기처럼 꾸민 것이다. 예술을 통해 문명, 환경, 난민 등 동시대 이슈들을 고찰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에 대해서도 풀어낸다.
이번 비엔날레는 회화, 설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AI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사용한 작품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같은 기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지는 특별전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도 함께 관람하기 좋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부스에서 갤러리들이 작품을 거래하는 미술장터와 달리, 비엔날레는 전시 감독이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골라 선보이는 행사다. 작품의 가격이 아닌 예술성만을 느끼고 싶다면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하반기 대한민국을 수놓는 국내 대표 비엔날레들을 모아봤다.
부산비엔날레
8월 15일 개막하는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제목 그대로 '어둠'에 주목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먼저 '어둠 속의 잡담'를 주제로 한 토크, 국내외 사운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을 모아놓은 '어둠 속의 연주' 등의 프로그램을 내놨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감독을 맡은 건 뉴질랜드 출신 베라 메이, 벨기에에서 온 필리프 피로트. 두 사람은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비가 쓴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18세기 해적 공동체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천한 집단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바다 위에서 돌풍과 태풍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리더가 됐다는 해적 사회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전시 구성도 '해적'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정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마치 해적처럼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작가가 된 사람들을 모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을 누비며 현지에서 구한 소재로 작업을 펼치는 이두원, 가정주부로만 살아가다 마흔에 미술가가 된 윤석남 등이 모두 해적과 삶의 궤적을 같이 한다고 여겼다.
팬스타크루즈와 함께 바다 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부산과 오사카 사이를 오가는 크루즈 위에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관객들은 기존 전시장소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전시공간인 크루즈 선박 내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마치 해적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끝없이 이동하며, 관객들에게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30돌' 광주비엔날레
9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만난다. 비평서 <관계의 미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가 감독을 맡았다.
부리오는 이번 전시의 주제로 '판소리'를 택했지만, 한국 전통극인 '판소리'가 아니라 공간을 뜻하는 '판'과 '소리'라는 단어의 조합에 주목했다. 그간 미술 비엔날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감각, 소리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부리오는 특히 관객 참여형 전시를 구상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전시장 안에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설명하는 글을 적게 만들거나, 난로를 가져다 두고 불 앞에 몸을 녹일 수 있게 하는 등의 시도를 해 왔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도 그가 현장을 찾은 관객들의 개입을 얼마나, 또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비엔날레
오는 11월, '환상의 섬' 제주에도 비엔날레가 찾아온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주최로 내년 2월 16일까지 83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14개국에서 39팀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국내 작가 17명과 해외 작가 22명으로 구성됐다. 4회째를 맞이하는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표류'다. 문명의 여정 속에서 인간이 표류하며 만남과 충돌, 융합을 반복했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나라 교역 중에 표류해 탐라국에 도착한 왜국 사신과 조우한 탐라국 왕자 아파기(阿波伎)의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가상의 표류기를 꾸몄다. 이상향을 찾아가는 인간의 삶을 마치 하나의 표류기처럼 꾸민 것이다. 예술을 통해 문명, 환경, 난민 등 동시대 이슈들을 고찰하고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에 대해서도 풀어낸다.
이번 비엔날레는 회화, 설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AI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사용한 작품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같은 기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지는 특별전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도 함께 관람하기 좋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